[기자수첩]지금이 "^^" 찍을 때인가

[기자수첩]지금이 "^^" 찍을 때인가

문완식 기자
2008.10.08 08:22

'故 최진실 사채업 괴담' 관련 피의자 A씨가 7일 오후 경찰에서 추가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A씨는 이미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A씨는 이날 오후 1시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추가 조사를 받고 오후 3시30분께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추가 조사를 받을 당시 A씨는 하얀 상의에 파란색 하의를 입고 있었지만, 나갈 때는 40여 명의 취재진을 따돌리기 위해 붉은색 체크무니 하의와 파란색 조끼를 입는 등 007작전을 방불케 하며 정문이 아닌 서초경찰서와 이어진 뒷산으로 빠져나갔다.

일단 A씨 입장으로만 보면 그럴 만했다. 불구속 입건, 경찰 조사, 수많은 취재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과 통화한 이틀 후 최진실의 자살 등 스물다섯 어린 나이엔 일련의 사건들이 감당키 어려웠을 게 분명하다. '괴담' 유포도 따지고 보면 최초 유포자도 아니었다. 그냥 퍼 나르기만 했을 뿐이니까.

더욱이 A씨는 이날 경찰조사에서 최진실이 자살하기 이틀 전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선처를 부탁한다"면서도 최진실의 감정이 요동치도록 했다는 사실에 대해 "미안하다"며 사죄의 의미를 전했다.

그러나 기자를 이렇게 맥 빠지고 허탈케 하는 건 이날 A씨의 태도다. 어쨌든 자신은 '최진실 사채업 괴담' 유포에 일조를 했고, 이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상태이며, 더욱이 아무리 "선처를 호소했다"고 하지만 A씨는 최진실이 자살하기 며칠 전 '생전'의 그녀와 전화 통화를 한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기자가 이날 경찰서 현장에서 지켜본 바로는 경찰 조사를 받던 A씨는 서초경찰서 3층 조사실에서 웃으면서 형사와 얘기했다. 조사를 마친 경찰 관계자도 "A씨가 조사를 마친 뒤 '취재진을 따돌려야겠다'면서 교복과 비슷한 차림으로 갈아입고 나갔다"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시종 태연한 모습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A씨는 낮 12시 이전 서초경찰서에 도착, 누구인지를 묻는 다른 기자의 질문에 "컴퓨터 서버관리 회사에서 나왔다"며 웃으며 답했다. 이어 A씨는 사이버수사팀이 있는 3층 밖 외부계단에서 태연하게 웃으며 조사를 기다렸다.

이날 오후 1시가 넘어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사이버수사팀에서 조사를 받고 있음을 확인해줬고, 앞서 컴퓨터 서버관리 회사 직원이라는 A씨의 말을 들은 취재진은 몇 번이고 그녀가 A씨인지를 경찰 관계자로부터 확인, 진짜 A씨라는 답변을 받았다.

취재진이 이처럼 조사를 받는 사람이 A씨인지 누차 확인한 이유는 이 사람이 하도 웃으면서 태연히 경찰 조사를 받아 그 진위여부가 의심됐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서초경찰서에서 점심 식사를 했으며 식사 후 경찰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초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이 이날 오후 2시50분부터 기자들을 상대로 일문일답 시간을 가지는 도중, 사이버수사팀 관계자가 '15시30분 나간다'라는 메모를 권 수사과장에게 보여줬다. 이를 눈치 챈 취재진이 3층 사이버수사팀으로 올라가 기다렸으나, A씨가 옷을 갈아입었으리라고 예상한 취재진은 아무도 없었다.

옷을 갈아입은 A씨는 서초서 외부계단을 통해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간 뒤 서초서와 뒷산을 잇는 구름다리를 지나 뒷산 쪽으로 쏜살같이 뛰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A씨임을 안 취재진 수십여 명이 A씨를 쫓아 부리나케 달려갔지만 이미 그녀는 종적을 감춘 뒤였다.

그리고 이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A씨는 취재진을 따돌린 뒤 형사에게 "형사님 수고하셨어요. 무사탈출^^"이라고 적힌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의 상식으로 '^^'라는 이모티콘은 미소를 짓거나 흐믓하거나 뭔가 마음에 들 때 보내는 이모티콘이다. 아무리 취재진의 무지막지한 질문공세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피한 게 큰 위안일지라도, 이런 '무사탈출^^' 메시지를 보낼 순 없는 거다. 최진실과 전화통화는커녕, 고인을 그저 TV로나 봤을 뿐인 대다수 국민이 아직도 충격과 허탈감에 빠져있는 이 때, A씨가 보냈다는 '^^'의 의미는 너무 사뿐하고 경쾌하다, 너무나.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