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처럼' 작곡가는 지금 '사회적기업가'

'바위처럼' 작곡가는 지금 '사회적기업가'

황국상 기자
2008.11.17 16:01

[인터뷰] 재활용악기 퍼포먼스그룹 '노리단' 공동대표 안석희 씨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후략)"

1990년대 초중반 대학을 다닌 이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이 노래를 들으며 대학생활을 시작했대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의 사춘기를 순수하고 올곧게 살아가길 바랐던 많은 젊은이들에게 이 노래 '바위처럼'은 각별하다.

요즘도 각종 집회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노래 중 하나지만, '바위처럼'은 소위 '운동권'들만의 노래라곤 할 수 없다.

이 노래는 지금도 2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이르는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곡 중 하나다. 풋풋한 젊은이었을 때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바위처럼'을 비롯해 2000년대 초반까지 150~200여곡의 민중가요를 줄기차게 작사·작곡한 '유인혁' 씨,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그를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의 삼미시장 한 가운데서 만났다.

'유인혁'은 2004년부터 온갖 쓰레기들을 악기로 만들어 연주하는 재활용 퍼포먼스 그룹 '노리단'에 합류했다. 이름도 바뀌었다. 그는 이제 '민중가요 작곡가 유인혁'이라는 옛 이름이 아닌 '안석희'라는 본명을 명함에 담고 다닌다.

이날은 노리단이 한국토지공사가 공모한 '놀이터 리모델링 사업' 준공식이 있던 날. 노리단의 공공장소 리모델링 작품인 '삼미어린이공원' 곳곳에선 동네 아이들이 입에 빈 요구르트 병을 재활용해 만든 악기를 저마다 입에 물고 뛰어 다닌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두드릴 때마다 맑은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실로폰 벤치', 의자에 앉을 때마다 의자 안에 설치된 종(鐘)이 제각각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울리는 '종 의자', 농구공이 들어갈 때마다 농구대 안에 설치된 장치가 각각 소리를 내도록 한 '감돌 농구대' 등 노리단의 작품들을 보며 마냥 신기해한다.

↑ 경기 시흥시 신천동 삼미어린이공원 내에 '노리단'이 
설치한 '소리공원' 놀이기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종 의자' '실로폰 벤치' '종소리 나는 농구골대'
↑ 경기 시흥시 신천동 삼미어린이공원 내에 '노리단'이 설치한 '소리공원' 놀이기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종 의자' '실로폰 벤치' '종소리 나는 농구골대'

안석희 노리단 공동대표(사진·41)는 노리단이 만든 악기를 직접 두드려보던 시민들의 얼굴 표정이 환하게 바뀌는 걸 보고서 이 일에 매진하게 됐다고 말한다.

"직접 두드리고 거기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거잖아요. 우리의 활동이 다른 사회적 기업이나 문화예술인 등, 좋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려는 이들에게 모델이 됐으면 합니다."

노리단은 자동차 바퀴의 휠이나 하수구용 파이프, 폐철골·폐타이어, 빈 페트병, 나무조각 등 보잘 것 없던 물건들을 어엿한 악기로 만들어 낸다. 이 악기들을 가지고 노리단이 오른 무대만 해도 '세종문화회관 공연'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제 초청공연' '세계 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재활용 악기제작법을 외부에 가르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이 지난해 거둔 매출은 4억5000만원에 이르렀다.

↑ 지난 15일 경기 시흥시 신천동 삼미어린이공원에서 어린이들과 
노리단원(맨 왼쪽)이 함께 요구르트 병을 재활용한 악기를 입에 
물고 공원 이곳저곳을 거닐고 있다.
↑ 지난 15일 경기 시흥시 신천동 삼미어린이공원에서 어린이들과 노리단원(맨 왼쪽)이 함께 요구르트 병을 재활용한 악기를 입에 물고 공원 이곳저곳을 거닐고 있다.

2004년 노리단이 결성될 당시, 기획자, 예술가, 청소년 등 안 대표를 포함해 11명이었던 단원들의 수는 이제 60명으로 늘었다. 단원들이 더 많아진 만큼 공공디자인팀을 신설해 자신들의 활동영역을 넓혔다.

시장 한 켠 '버려진 공간'에 '버려진 것들을 가공한 악기'를 설치하면, 공간과 사람 모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삼미어린이공원에 구현한 것이 그 예다.

이같은 활동들이 어우러져 노리단의 올 예상매출은 약 15억~18억원에 이른다. 안 대표는 공연과 공공디자인이 보다 활발해진다면 내년 매출이 2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득 사회적 기업 대표로서의 '안석희'와 민중가요 작곡가로서 '유인혁'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기자의 질문에 돌아온 그의 답은 바위처럼 우직했다.

"문화예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점에서, 제가 과거와 특별히 달라진 건 없습니다. 단지 대중과 소통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인 사회적 기업으로 무대를 옮겼을 뿐이에요."

한편 노리단은 오는 22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폐자전거를 가공한 악기로 여는 공연 '핑팽퐁'을 다음달 7일까지 선보인다. 사람과 공간, 자연을 함께 살리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을 볼 수 있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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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상 기자

머니투데이 황국상입니다. 잘하는 기자가 되도록 많이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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