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남한산성과 명박산성

[광화문]남한산성과 명박산성

방형국 부국장 겸 전국사회부장
2008.06.25 09:45

최명길이 남한산성에서 내려다본 송파나루와 삼전도 주변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짙은 안개는 어디로 갈지 모를 조선(朝鮮)의 앞날인 것만 같아 최명길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청군에 결사항쟁을 해야 할 지, 치욕을 당하더라도 종묘사직이 살아남기 위하여 항복을 해야 하는 지 시시각각 마음이 흔들린다.

"항쟁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요, 항복은 가능한 치욕", "아름답게 죽을 것인가, 더럽게 살 것이가?" 최명길은 항복을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소설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씨가 던진 명제를 놓고 '항쟁과 항복' 사이에서 갈등을 거듭한다.

대의(大義)를 고집하며 청과 싸울 것을 주장하는 김상헌의 우직스런 고집이 차라리 부러웠을까.

김상헌인들 고민과 번민이 없었으랴. 김상헌은 피란처라 더욱 귀한 막걸리 한사발이라도 구하면 꼭 최명길을 찾았다. 최명길을 아끼는 안타까운 마음의 발로였다. 최명길이 왜 항복을 마음 속에 두고 있는지 속 깊은 그의 심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두 신하사이에서 갈등하던 인조는 끝내 항복문서를 쓸 것을 명한다. 뉘라서 항복문서를 쓰고 싶었을까. 최명길이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항복문서를 쓴 최명길이나, 항복문서를 찢은 김상헌이나, 찢어진 항복문서를 다시 붙이는 최명길이나, 이를 눈물로 바라보는 김상헌이나 백성과 종묘사직을 걱정하고 생각하는 높이과 깊이는 같았으리라.

2008년 6월10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담화문을 발표하며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제가 오래 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래 소리도 들었습니다"라며 '100만 촛불대행진'을 지켜본 심정을 토로했다.

경찰이 광화문에 쌓은 컨테이너, 일명 '명박산성' 너머 촛불을 보는 그의 심정은 비통함이었을 것이다. 이때 이 대통령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 뿐이었을까. 이 대통령이 촛불시위로 고립무원에 빠져있을 바로 때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그 덕에 권력을 쥔 주변 사람들은 권력투쟁에 몰입했다.

인적쇄신론이 강하게 일자 자기 사람들을 주요 포스트에 앉히려는 듯이 작심하고 일전을 벌였다. 인사권을 놓고 서로 독설을 퍼붓다 대통령이 외로울 때 사표를 던진 이도 있었다.

각 부처 장관들도 촛불시위로 반정부 여론이 높아지자 공기업 민영화, 공무원연금 개혁, 노사문제 등 굵직한 현안들을 방치한 채 숨소리마저 죽이고 있다. 그에게는 아무도 없다.

평생을 불도저처럼 살아온 탓일까. 이 대통령의 '소통'(疏通)방식에 문제가 많아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말도 많이 들린다. 그 스스로 실용적인 소통을 가로막는 '산성'을 쌓아 올린 것은 아닐까.

지금 그에게는 짙게 깔려 있는 안개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 지 올곧게 말할 수 있는 최명길 김상헌이 있어야 한다.

훗날 300여 년 뒤에 어느 작가가 '쇠고기 파동'을 소재로 '명박산성'이라는 제목의 역사소설을 쓸 때 최명길이나 김상헌과 같은 등장인물은 없을 것 같다. 두 충신사이에서 국가의 장래를 놓고 깊은 고민을 하는 인조의 모습은 어찌 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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