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막말과 카타르시스

[기자수첩]막말과 카타르시스

배혜림 기자
2010.02.10 12:51

'카타르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 나오는 용어로 '정화'라는 의미다. 그리스 비극에서 주인공은 고난과 패배를 겪지만 이를 보는 관객은 억압당한 느낌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해방감 또는 정신적 고양을 느낀다는 것이다.

눈물을 쏙 빼게 하는 책 혹은 영화가 가슴 가득 채워주는 개운함이 바로 '정화'다. 고대 그리스 미학을 강의한 한 교수는 '카타르시스'의 순간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면서 배변의 과정에 비유하기도 했다. 배변 과정의 고통 끝 찾아오는 시원하고 상쾌한 바로 그 순간이라고 말이다.

카타르시스는 20세기 초 정신분석에서 무의식 속에 있었던 마음의 상처나 콤플렉스를 말이나 행위로 표출시켜 노이로제를 치료하는 정신요법의 이름으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분하고 억울하고 불쾌한 감정이 입을 통해 바깥으로 발산되는 순간을 정화의 순간이라고 보고 신경증 치료에 응용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욕설과 막말에도 '해갈'이라는 순기능이 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나라가 온통 카타르시스요법을 통한 신경증 치료장으로 변해버린 것 같다. TV를, 컴퓨터를 켜면 막말 또 막말이다. 최근에는 판사와 검사의 막말이 도마 위에 오르고 교단에서의 폭언 사실까지 적발되면서 이른바 '사회 지도층'의 언행이 논란이 되고 있다.

39세 판사가 69세의 원고에게 "어디서 버릇없이"라고 면박을 주고 검사는 "전화 통화할 때부터 삐리하더니 와서도 건방지게 구네", "네놈 아주 건방지구나", "죽으려고 환장했어", "네 성씨(姓氏)들은 머리가 너처럼 둔해"라며 모욕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침해 상담 기관별 현황'에 따르면 2008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검찰 관련 상담 신청은 252건이었다.

판·검사와 교사의 막말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에 대한 불쾌감과 분함을 표출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법원과 검찰은 특권의식에 도전을 받고 화가 치밀어 오른 자들이 막말을 내뱉으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곳이기 이전에 억울한 국민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곳이다. 이번 막말 논란을 계기로 법원과 검찰이 시민을 존중하고 거악(巨惡)과 통쾌하게 싸우는 모습으로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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