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은 3심 중 최종 심급을 관장하는 사법부의 보루다. 사건의 최종 판결권과 법률 해석권이 모두 대법관에 있다. 대법관이 누구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대법관은 특정 직업, 성별, 지역에 국한돼서는 곤란하다. 사회가 복잡 다양화될수록 각계의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부딪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때문에 대법관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소외계층과 소수자를 대변할 수 있는 대법관이 꼭 필요하다. 대법관의 면면은 한 나라의 사법 수준을 가늠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김영란 대법관이 다음달 24일 6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그는 2004년 8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대법관에 올라 남성 위주였던 당시 법조계에 신성한 충격을 줬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균형잡힌 판결로 호평을 받았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여성ㆍ청소년ㆍ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의 시각을 대변해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최근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할 생각이 없다'고 밝혀 전관예우가 사리지지 않고 있는 법조계에 다시 한 번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아름다운 퇴임이라 할 만 하다.
대법관 제창자문위원회는 지난 19일 김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후보 4명을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추천했다. 이번 대법관 인선은 여성 대법관의 후임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추천된 후보자는 모두 54살 동갑내기로 서울대 출신 남성 법관들이었다. 기대와 달리 사실상 기수와 서열을 중시하는 기존 관행을 그대로 되풀이한 셈이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 22일 이들 중 이인복 춘천지법원장을 이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물론 이 원장의 자질과 면모는 대법관의 자리에 오르기에 충분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여성 대법관의 수가 줄어든다는 사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김 대법관이 퇴임하면 여성 대법관은 전수안 대법관만 홀로 남게 된다. 여성 인구는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반면 14명의 대법관 중 여성은 고작 한 명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여성인 엘리나 케이건의 대법관 인준안이 상원 상임위에서 최근 통과돼 총 9명 대법관 중 3명이 여성으로 구성되게 됐다. 우리와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어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