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벌(罰) 대신 선물 주는 법원

[기자수첩]벌(罰) 대신 선물 주는 법원

배혜림 기자
2010.09.03 13:51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비행 청소년들. 법원에서 보호처분(소년법은 '처벌'이라는 단어 대신 '보호처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을 받고 나면 마음을 바로잡고 반성하게 될까.

서울가정법원이 최근 법정에 선 청소년을 보호처분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잘못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법원은 6월부터 청소년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해 소년사건을 심리하는 청소년 참여법정을 열고 있다.

청소년 참여법정은 비행 청소년이 또래 배심원에게서 받은 숙제를 충실히 하면 판사가 별도의 보호처분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오토바이를 훔치다 붙잡혀 법정에 섰지만 숙제를 다 해 지난 1일 더 이상 재판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받은 A(15)군은 청소년 참여법정의 첫 결실이었다.

A군은 안전운전 교육받기와 금연클리닉 참가, 독후감 5편과 40가지 주제의 일기쓰기, 부모님 손발 씻어드리기 등의 과제를 모두 충실하게 해냈다. "어머니 손을 씻겨드리면서 굳은살을 봤어요. 제가 성실히 살면 어머니의 굳은살도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A군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A군은 비행을 저지른 또래의 사건에 배심원으로 참석해 "안전운전 교육받기 숙제를 반드시 내줘야 합니다. 제가 그 교육을 받아봤는데 준법정신을 길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성행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데도 앞장섰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판사들의 따뜻한 시선과 마음이었다. 서울가정법원 소년3단독 신한미 판사는 A군에게 케이크와 책을 선물하는 작은 축하행사를 마련했다. 신 판사는 야구를 좋아하는 A군에게 박찬호 사인볼을 구해 선물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아 책 '야구의 추억'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서울가정법원의 또 다른 판사는 "앞으로 숙제를 마쳐 재판을 면하게 될 청소년에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지 고민"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법관들이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청소년의 진짜 부모가 된 것 같았다.

A군은 판사의 축하선물을 평생 잊지 못할 삶의 계기로 삼을 것이다. 비행을 저지른 아이에게 어떤 벌을 줄까를 고민하는 대신, 반성하는 아이에게 무슨 선물을 줄까 고민하는 법원의 모습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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