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사건팀]낙후된 경찰서마다 컨테이너 사무실…민원인도 얼굴 찌푸려
서울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 A경찰서 강력 1팀 경찰관은 다가오는 무더위가 두렵다. 강력1팀 사무실은 '컨테이너 가건물'. 작렬하는 태양 아래 자리잡은 컨테이너 가건물 사무실을 보기만 해도 온몸은 뜨거워진다.
5월말이지만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하는 지난 26일 오후. 컨테이너 사무실의 문을 열면 가장 먼저 후끈한 공기가 반겼다. 에어컨을 틀지만 규정상 오래 켜 놓을 수 없다. 전원을 끄고 몇 분 후 컨테이너는 다시 달궈졌다. 강력반 경찰관들의 이마에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문을 열어 보지만 열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우직한 경찰관들은 오랜 컨테이너 생활 속에 "내성이 생겼다" "일할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5월말에도 이렇게 찜통인데, 다가올 본격적인 무더위에 걱정이 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닌 것처럼.
컨테이너 사무실에 에어컨이 있긴 하지만, 하루 종일 켜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공기관 에너지 정책 탓에 냉난방 기기 사용시간과 온도가 통제되기 때문이다. 에어컨이 꺼지면 여름의 뜨거운 공기는 다시 컨테이너 사무실을 사막처럼 달아오르게 만든다.

◇ 낙후된 경찰서 마다 컨테이너 사무실
26일 기준으로 서울 금천경찰서와 방배경찰서, 중랑경찰서, 강서경찰서 소속의 일부 경찰관들이 컨테이너 혹은 박스형 가건물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컨테이너 가건물을 사무실로 활용하는 이유는 경찰서가 비좁기 때문이다. 이들 경찰서 건물은 건축된 지 모두 적어도 30년에서 많으면 40년 이상이다. 늘어난 지역의 민원과 범죄를 소화하기에는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평가를 경찰 내부에서도 받고 있다. 약 10년 전부터 일부 특정 팀들이 경찰서 본 건물에서 컨테이너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들 경찰서들 중 일부는 건물 신축계획이 있지만 완공까지는 몇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경찰관들은 몇번의 찜통 더위와 한파를 견뎌야 한다.
서울 중랑서는 신청사 건립 계획이 확정됐지만, 공사 완료 후 이전까지는 적어도 3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경찰측은 전망하고 있다. 금천서의 경우 이전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빨라도 2015년부터 건축이 시작될 예정이다. 이마저도 계획이 불투명한 실정이라고 경찰 관계자는 귀띔했다.
◇ 여름엔 '찜통' 겨울엔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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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사무실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이곳 경찰관들에게 가장 큰 난제는 역시 여름 무더위였다. B경찰서의 박모 경찰관은 "여름에 일반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지만 컨테이너는 외부의 열기를 그대로 흡수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컨테이너 속 경찰관들은 여름이 지났다 해도 웃을 수 없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에어컨과 히터와 같은 냉·난방기기가 없으면 컨테이너 안과 바깥의 온도는 거의 같은 수준으로 유지된다.
겨울의 혹한 속에 사무실에 히터를 틀면 머리 위는 따뜻한데 허리 아래쪽은 차가운 상태가 지속된다고 했다. 추위가 심한 겨울날에는 원칙상으로는 규정 위반인 개인용 소형 온풍기를 발밑에 틀어놓지 않으면 근무를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온도 조절이 잘 안 되니 질병 발생이 잦을 수밖에 없다. 박 모 경찰관은 "컨테이너 속 형사들은 비염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겨울에는 감기를 달고 산다"고 밝혔다.
여름철 장마도 '공공의 적'으로 지목된다. 비가 많이 오면 컨테이너 사무실에 비가 새기도 한다. B경찰서 한 수사팀의 가건물 사무실에서는 지난해 여름 장마기간 동안 비가 계속 스며들며 책상이 다 젖어버린 적도 있다.

◇ 호화청사? 경찰에겐 있을 수 없는 얘기
컨테이너 속 경찰관들은 이같은 현실 속에서 이른바 '호화청사'들을 볼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C경찰서의 이모 경찰관은 "구청뿐 아니라 하다못해 인근 주민센터도 요즘 건물이 번듯한데 경찰서는 참 초라해 보인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2011년 경찰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청사확보 및 시설 개선에 약 2039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지난 해 약 2251억원을 사용한 점을 감안하면 지원이 오히려 200여억원(약 10%) 가량 줄었다. 2009년에도 올해 예산보다 많은 약 2194억원을 시설 개선에 배정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컨테이너와 가건물 속 경찰관들은 용산구청 건물 하나 짓는데 약 1500억원의 세금이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하면 쓴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용산구청은 지난해 3월 완공돼 이른바 '호화청사'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문제는 낙후된 시설이 경찰서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각 지역에 위치한 오래된 지구대와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D경찰서 모 지구대의 경찰관들은 "여름에 샤워시설도 안 갖춰진 낡은 지구대 건물에서 일하다보면 상대적으로 좋은 시설에서 근무하는 다른 공무원들에게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입을 모았다 .
컨테이너 사무실과 같은 낙후된 시설은 '경찰의 문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경찰서에 찾아오는 민원인들 역시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찜통 수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D경찰서의 김모 경찰관은 "민원인들이 컨테이너 가건물로 찾아오면 더위나 추위로 여러 불편을 겪는데 형사들의 마음 한 켠도 불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