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시장]나를 버린 아버지도 부양해야 하나

[법과 시장]나를 버린 아버지도 부양해야 하나

조혜정 변호사 서연합동법률사무소
2012.03.11 15:09

패륜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

전화를 건 K씨는 매우 격앙된 목소리였다. K씨는 10여년 만에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고 화가 나서 못 견디겠다고 했다.

K씨의 부모는 20여년 전 아버지의 외도, 폭력 때문에 이혼했다. 이혼 후에도 한동안 아버지는 가끔 집에 와서 돈을 내놓으라면서 어머니를 때리고 세간을 부수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를 피해서 어머니는 몰래 이사까지 했다.

이혼 후 어머니 혼자서 K씨와 동생을 키웠다. 아버지는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혼 후 외도의 상대방이었던 여자와 그 여자가 낳은 자식들과 함께 살았다. K씨와 동생을 보러온 적은 없었다. 한 마디로 K씨에게 아버지는 '남보다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10여년 만에 전화를 한 용건은 병원비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심장병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 중인데 병원비가 없으니 돈을 달라, 만약 병원비를 주지 않으면 부양료 청구 소송을 하고 퇴원해서 너희 집으로 갈 테니 그런 줄 알라고 통보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K씨는 자식들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가 이제 와서 염치없이 병원비를 대달라는 것에 화를 참을 수가 없다. 차라리 불우이웃에게 기부를 하지 아버지의 노후를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 K씨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아버지가 부양료 청구소송을 할 경우 제가 아버지 병원비를 내야 하나요?’ 하는 것이 그의 질문이었다.

자식을 안 돌본 아버지가 늙고 병들어 나타나 자기를 보살펴 달라고 할 때 자식은 과연 그런 아버지를 돌봐야 할까? 진부한 TV 단막극 소재로나 어울릴 법한 이 문제가 근래 재등장하고 있는 이유는 이혼율 증가로 인한 가족해체 때문이다.

이혼 후 자녀를 키우지 않는 쪽은 시간이 지나면 자녀와 멀어지고 서로 연락조차 안될 정도로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TV 드라마 속에서야 자식이 아버지를 용서하고 가족애를 복원하는 따뜻한 결론이 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비슷한 문제로 상담을 했던 분들은 누구나 자신을 안 돌본 부모가 자신에게 부양청구를 하는 데 대한 분노를 참지 못했다.

자식이 자발적으로 아버지니까 부양하겠다고 한다면 상관없지만, 자식이 패륜부모에 대한 부양을 거부할 때 법률적인 부양의무를 인정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법률상 부양의무가 있다는 의미는 만약 부양의무가 있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부양을 하지 않을 경우, 부양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은 부양료지급청구소송을 하여 부양료 지급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민법은 ①직계혈족과 그 배우자간 ②기타 생계를 같이 하는 친족간에는 부양의무가 있다고 정하고 있다(민법 제974조). 일단, 이 조문만 놓고 보면 아버지는 직계혈족이니까 자식은 법률적인 부양의무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단, 부양권리자가 자신의 능력으로는 살 수 없을 때만 부양청구가 가능하다). 판례가 해석론으로 자기 의무를 게을리 한 부모는 부양하지 않아도 좋다고 하지 않는 한.

그런데, 판례는 ‘그런 부모라도 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친족간의 부양의무는 노부모가 과거 미성숙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였는지, 부양권리자가 그 도덕적 의무를 다하였는지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K씨처럼 남보다 못한 아버지를 둔 자식들은 다소 억울할 수도 있는 결론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법원은 융통성을 발휘해서 자기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양권리자가 부양청구를 하면 자식의 부양의무 자체는 인정하되, 부양료금액을 상징적인 수준(대개 월 10만원 정도)으로 낮추어 정한다. 핏줄은 핏줄이니까 부정할 수는 없지만, 핏줄만을 나눈 대가가 너무 비싸서는 안 된다는 배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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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성 기자

2011년 입사해 사회부 법조팀, 증권부, 사회부 사건팀, 산업1부 자동차팀을 거쳐 현재는 정치부 국회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20년 제14회 한국조사보도상 수상 2024년 제 19회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 언론상 신문보도부문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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