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日대사관앞 '소녀상'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부부

화가 난 것 같으면서도 담담하고, 겁먹은 듯 보이지만 무서운 표정으로 온 종일 일본대사관을 바라보는 소녀가 있다. 바로 지난해 12월14일 '제1000차 위안부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당시 세워진 위안부 평화비 소녀상이다. 22일로 소녀상이 세워진 지 꼭 100일이 됐다.
지난 20일 소녀상 조각가 김운성씨(47)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녀상 원본 조각이 한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소녀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이 이어졌다.
"우연히 아는 분을 따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찾아 윤미향 정대협 대표를 만났어요. 그분과 얘기를 나누던 중에 제가 미술하는 사람인데 뭐 도와드릴 게 없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위안부 수요집회가 곧 1000회가 된다면서 평화비라도 하나 세우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소녀상이 아니라 평화비로 불리는겁니다. 하지만 저는 비석보다는 사죄없는 일본을 지켜보는 동상이 훨씬 의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소녀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소녀상을 세우기로 결정한 이후 그는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인 자신의 딸을 모델 삼아 저고리 옷을 입히고 부인 김서경씨(46)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다만 그는 소녀상의 얼굴은 상상속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을 경우 모델이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작과정에서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부분은 주로 아내가 맡고 수차례 반복이 필요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은 남편이 맡았다. 이렇게 두 사람이 함께 4개월간 작업한 끝에 지금의 소녀상이 완성됐다. 부부는 완성된 소녀상에 만족하고 있다. 특히 복잡미묘한 소녀의 표정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이어 빈 의자와 소녀의 어깨 위에 앉은 새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빈 의자는 떠나가신 할머니들의 빈 자리이자 동시에 할머니 곁을 지켜주려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자리를 의미한다. 또 새는 이미 떠나가신 할머니와 살아 계속 투쟁하시는 할머니 사이의 소통을 뜻하는 영매라고 했다.

소녀상 원본 뒤엔 처음 구상했다는 주먹만한 크기의 샘플 조각도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원본과 샘플의 모습이 달랐다. 샘플 소녀상은 두 손을 무릎위에 다소곳이 포개고 있는 반면 원본 소녀상은 주먹을 쥐고 있다. 또 샘플 소녀상은 신발을 신고 발을 땅바닥에 완전히 붙이고 있지만 원본 소녀상은 맨발에 뒤꿈치가 바닥에서 떨어져 있다. 그는 제작과정 중에 느낌 감정들이 소녀상의 모습을 바꿔놓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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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협조적인 우리나라 정부와 뻔뻔한 일본을 보면서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소녀가 처음과 달리 주먹을 꽉 쥐게 된거죠. 또 신발도 안 신고 당장 도망치고 싶을 정도의 절박함을 담아내기 위해 맨발로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소녀상의 발 뒤꿈치가 땅바닥에서 떨어져 있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만 입고 도저히 이땅에 온전하게 발붙이고 살 수 없는 한맺힌 할머니들의 모습이죠."
1000차 집회 당시 김운성씨를 만났을 때 그는 "세워져선 안 될 동상이 세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를 다시 만났을 땐 보람도 있다고 했다. 비가 오면 사람들은 소녀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날씨가 추워지면 목도리를 둘러준다. 그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할머니들의 아픔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제 집회 현장에선 카메라에 소녀상의 모습을 담아가는 외국인들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입소문이 퍼져 해외에서도 소녀상 세우기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소녀상이 세워져도 여전히 일본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가운데 지난 9일과 12일 윤금례 할머니와 배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일본이 진심으로 사죄하는 날이 올 거 같냐고.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이제 일본인들도 집회를 찾아와 사죄해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있잖아요. 저는 사죄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요. 그래도 최소한 인간의 양심이 살아있는 한 반드시 이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중간에 그는 예술인들은 항상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관찰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날 '제1014차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수요집회'를 찾았을 땐 발신인 이름없이 소녀상 앞으로 편지 1통이 배달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배달된 편지를 읽고 공감하며 감동했다.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하나로 시작한 작품이 가진 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