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씨는 성년남자종원만 350명인 C종중(宗中)의 여자후손이다. C종중은 종중재산인 토지가 국가에 수용되어 보상금이 나오자 남자종원들에게만 통지를 하여 소집한 총회에서 성년남자종원들에게만 보상금을 분배하기로 결의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D씨 및 다른 여자후손들은 자신들에게도 종중토지보상금을 분배해달라고 요구했지만, C 종중 및 남자종중원들은 D씨 및 다른 여자후손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출가외인인 여자는 종중원이 아니니, 종중재산을 받을 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종중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하지만, D씨와 여자후손들은 이런 종중의 논리를 인정하기 어렵다. 똑같이 한 조상 아래 태어났는데 여자라고 종중원이 안되고, 재산을 못 받는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D씨는 종중 말대로 정말 여자후손들에게는 종중재산에 대한 권리가 없는 것인지, 여자들도 수용보상금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
종중의 재산을 분배받으려면 여성이 종중원으로 인정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종래 종중은 성년의 남자들로만 구성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고, 이런 인식을 반영하여 거의 모든 종중이 ‘종중은 성년의 남자로 구성된다’는 규약을 두고 있었으며, 대법원도 이런 통념을 관습법으로 인정해서 여성은 종중원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약 7년 전인 2005년 7월 21일 여성의 종중원지위에 대해서 대법원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판결을 내놓았다. ‘공동선조와 성과 본을 같이 하는 후손은 성별의 구별없이 성년이 되면 당연히 그 구성원이 된다고 보는 것이 조리에 합당하다’는 판결을 내려 여성의 종중원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판결은 당시 ‘딸들의 반란’이라고 불리면서 유림과 일부 종중의 강한 반발을 야기했지만, 이들도 대법원 판결 앞에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종중의 어르신들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아서, 나름대로 방어책을 강구하기도 했다. 여자 후손들에게는 종원 자격을 주지 않는다거나, 여성 종원들에게는 종중재산을 분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종중 규약을 만들거나, 그런 내용으로 총회결의를 하는 것이다. 혹은 여자 종원들에게는 소집통지를 하지 않고 총회 소집을 해서 남자들끼리 남자들에게만 종중토지수용보상금을 분배하기로 결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법원의 견해변경에 맞서서 남성들의 기득권을 지켜보려는 이런 노력들이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은 듯 하다. 여성종중원들에게 소집통지를 하지 않은 종중총회 결의는 무효이고, 여성들의 종원자격을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종중규약이나 총회결의는 무효라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종중재산에 대한 권리를 소송으로 주장하기만 하면, 어김없이 법원은 여성의 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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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자후손들이 종중재산을 나눠받는 절차가 약간 복잡하기는 하다. 기존의 결의대로 남성종원들과 같은 분배금을 달라고 종중에 직접 청구하면 간단할 터이지만, 기존의 결의는 무효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다시 적법한 소집절차를 거쳐서 열린 새로운 종중총회에서 여성 종중원들에게 분배를 해주는 내용의 새로운 결의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기존 결의 무효확인-총회 재소집-총회 재결의의 절차를 거쳐야 하니 시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게 든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자기 권리를 포기하곤 한다.
하지만, 법은 권리 위에서 잠자고 있는 자까지 챙겨주지는 않는다. 목이 마르면 스스로 우물을 파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이 우물은 파기만 하면 물은 반드시 나온다는 보장이 있으니 해볼 만한 시도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