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유·김일란 감독 "기억을 위해 만든 영화, 객관성은 전략"

"관객들의 '기억'이 또 다른 투쟁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기억과 기록의 투쟁을 함께 하려면 보다 정확히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영화 '두 개의 문'은 기억을 위해 만든 겁니다."
용산참사를 다룬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을 공동 연출한 홍지유(35)·김일란(40) 감독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들은 6만 관객 돌파 소감을 묻자 손사래를 치며 "책임감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 마냥 즐겁지 않다"고 토로했다.
'두 개의 문'은 지난 2009년 1월20일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원 1명이 사망한 용산참사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경찰과 철거민의 대립 구도를 벗어나 무리한 진압작전 자체를 지적하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다.
흥행을 예상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목표로 세웠던 관객 1만 명도 욕심낸 것. 홍 감독은 "많은 관객들이 보면 좋겠다고는 생각했지만 기대는 안 했다"며 "관객 수보다는 기록을 남긴다는 데 의의를 두고 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달 21일 전국 16개관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8일 만에 독립영화 흥행선인 1만 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을 돌파했다. 26일에는 누적 관객 6만 명을 넘어섰다. 개봉 36일만이다. 연이은 매진 행렬에 힘입어 상영관도 전국 47개관까지 늘었다.
영화 흥행에 대해 김 감독은 "영화를 보고난 뒤 생기는 죄책감 때문일 것"라고 분석했다. 김 감독은 "아직까지 용산참사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갖는 관객들이 있다"며 "뭐라도 해야겠다며 영화관람 및 대관운동을 벌이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영화의 대표적인 특성을 '객관성'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객관성은 이 영화의 전략"이라며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하느냐는 관객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보다 분명하게 철거민들의 입장을 담았으면 좋지 않았겠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관객들이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만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판단을 강요하고 싶진 않았어요."

이들이 '두 개의 문'을 제작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2009년 8월. 용산참사 재판을 모니터하다가 정확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이들은 남일당 건물 레아호프에서 다른 미디어 예술가들과 함께 용산참사 관련 기록을 돕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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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영화 제작을 제안한 건 김 감독이었다. 특히 경찰특공대원들이 망루 쪽으로 향하는 두 개의 문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작전에 투입됐다는 점에 집중했다. 이들은 당시 작전이 진압이 아니라 구조를 우선시 했다면 상황은 바뀌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 결과를 보고 실망했어요. 경찰특공대원들의 증언을 보면 경찰 진압작전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결과는 생존 철거민 6명 모두 실형을 선고받더라고요. 이런 왜곡에 대해 반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 "그날로 다시 돌아가 있는 그대로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
영화는 두 개의 플롯으로 구성했다. 경찰특공대가 진압명령을 받은 뒤 망루가 붕괴될 때까지 현장 이야기와 용산참사 관련 재판 과정이다. 당시 현장이 담긴 경찰의 채증 영상과 인터넷 방송 영상, 재판자료 등 객관적 기록과 씨름했다.
영화를 세상에 내놓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용산참사 재판에 영향을 줄까봐 영화 제작시기도 늦췄다. 김 감독은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다큐멘터리 제작은 섬세함이 많이 요구되는 작업"이라며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주제 전달방식에 대한 고민도 상당했다. 홍 감독은 "철거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않기로 한 선택을 끝까지 바꾸지 않고 진행하는 게 모험이었다"며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전했다.
영화가 완성단계에 이르렀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용산참사 유가족들. 홍 감독은 "영화 제작 의견을 주고받지는 못해도 항상 마음은 나누고 있었다"며 "처음에는 영화 보길 힘들어하는 유가족도 있었지만 결국 모두 영화를 응원해주셨다"고 말했다.
현재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다큐멘터리 배급구조 개선이다. 김 감독은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관람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며 "다큐멘터리는 배급구조가 불안정해 전국 극장 점유율이 1%도 안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나마 '두 개의 문'은 전국적으로 대관운동이 일어나면서 관객들을 만날 접촉면이 넓어진 것"이라며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지난 2002년 여성주의와 성소수자의 시각으로 인권문제를 다루는 문화운동단체 '연분홍치마'에서 만나 9년째 함께 활동하고 있다. '두 개의 문'은 이들의 5번째 작품. 다양한 사회적 사안을 다큐멘터리로 다루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다음 작품은 국내 최초 패션 디자이너였던 '노라노' 선생의 이야기. 1960년대 여성문화사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홍 감독은 "'두 개의 문'에 대한 관심이 다른 다큐멘터리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엔딩 크레디트를 이렇게 달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용산참사의 역사적 진실을 위해 기억과 기록의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이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용산참사에 대한 기억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가 담긴 말이다.
홍 감독은 "기억과 기록의 투쟁이 시작된다면 '두 개의 문'이 해야 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당장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고, 진상규명을 위해 관심을 기울인다면 언젠가는 바뀌지 않을까요. 10만 관객이 넘으면 서울광장 잔디밭에서 모이자는 의견도 있어요. 그날이 오면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