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들과 아이들 얘기하던 자리에서 유럽 유학을 다녀온 후배는 갑자기 "사실 내가 우리 아들한테 제일 걱정되는 건 나중에 결혼 상대라고 남자를 데려와서 허락해달라고 하는 거야. 그러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될 것 같아"라고 말했다.
유학시절 동성커플들을 적잖게 봤다는 그 후배는 머리로는 동성커플을 이해할 수 있지만 감정적으론 수용이 잘 안된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후배가 괜한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남의 시선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동성결혼을 하겠다고 나설 무모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빨리 변하는 모양이다. 지난 15일 영화 '조선명탐정'의 감독 김조광수씨가 오랫동안 교제하던 동성애인과의 결혼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성결혼 공개발표가 나온 걸 보니 전세계적인 동성결혼 논란에서 우리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김조광수씨의 동성결혼 발표를 보고 우리 법원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지 궁금해져 판례를 찾아봤다. 동성결혼 문제는 아니지만 동성간의 사실혼(동거) 관계를 끝내면서 한쪽이 다른 쪽을 상대로 사실혼 부당파기로 인한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청구한 사건에 대한 2004년 인천지방법원 판례를 찾을 수 있었다.
사안은 동성인 두 사람이 상당한 기간(원고 주장에 의하면 21년간) 동거하면서 공동의 노력으로 재산을 형성했는데, 재산명의자였던 당사자가 상대방을 의심하고 폭행·협박해 동거관계가 깨지게 되자, 재산명의를 갖지 못한 쪽이 재산명의자를 상대로 해서 사실혼 관계 종료에 따른 위자료와 재산분할(청구액은 1억7500만원)을 청구한 것이었다.
원고는 유사 성관계를 갖는 등 사실혼관계였다고 주장했고 피고는 상당기간 한 집에서 살기는 했으나 친구사이였을 뿐이라고 했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우리 헌법과 민법이 예정하고 있는 혼인은 일부일처제를 전제로 하는 남녀의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의미하고 아직 그 의미에서 변화를 찾을 수 없다"면서 "동성간에 동거관계를 사실혼으로 인정하여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할 수 없다"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개인적으로 10년 전 판례란 점을 감안하면 이런 결론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20년간 동거한 관계에서 재산분할청구가 인정되지 않았다는 점은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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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흘렀지만 개인의 동성애적 지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데 대해 우리 법원은 아직도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2011년 나온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청구사건에서 대법원의 태도를 보자.
이 사건에서 신청인은 여성적 성향을 보이는 남성으로 심한 성정체성 장애를 겪어왔다. 그는 1992년 결혼해서 1994년 아들을 낳았으나 이혼하고 2006년 성전환 수술을 받아 여성의 외관을 하게 된 후 2009년 성별정정을 신청했다.
대법원은 2006년부터 성전환자 호적상 성별정정이 허용됐음에도 혼인 중이거나 미성년자인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 중 하나로 혼인 중인 성전환자에 대해 성별정정을 허용할 경우 법이 허용하지 않는 동성혼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는 점을 들었다.
얼마 전 대법원이 부부사이의 강간죄를 인정해 성적인 자기결정권의 인정 범위를 대폭 확장시켰음에도 아직까지는 성적인 자기결정권의 인정범위 안에 동성결합까지 포함시켜주기는 어려운 듯하다.
현재까지의 법원 태도로 보면 가까운 시일 내에 동성결합에 대해 긍정적인 결론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과 결혼제도에 관한 인식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고 이런 변화가 일정시간 후 결국은 제도의 변화로 귀결됐던 과거 경험을 보면 동성결혼합법화가 남의 일만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