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 스트레스는 며느리들의 전유물인가. 한가위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처가집으로 향하는 사위들의 발걸음도 가볍지만은 않다. 십수시간씩 운전대를 잡고 꾸역꾸역 처가집에 도착해보면 날아드는 것은 장모님의 잔소리. 뭔가 불편한 처가집 식구들도 스트레스 대상이다.
일년내내 '돈 벌어오는 기계'로 집사람에게, 자식들에게 치이며 살아오다 명절 한때만이라도 귀한 자식 대접받고 싶은 소박한 마음은 이제 사치다. '처월드 스트레스'를 호소할라치면 돌아오는 건 집사람의 냉소뿐이다.
◇툭하면 능력좋은 처남 손윗사위와 비교 "처월드 스트레스"
중소기업에 다니는 A씨(37). 이번 추석 연휴가 닷새나 되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다. 처가집에서 장모님 등쌀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면 그렇다. A씨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줄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처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잔소리를 할 때다.
요즘 장모님의 잔소리 테마는 집 문제다. "애 데리고 언제까지 전세집을 전전긍긍할꺼냐"며 시작되는 잔소리는 "처남은 낼모레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도 회사에서 저리로 대출을 해줘 하나도 걱정 안 시킨다"는 말로 끝난다.
자유분방한 집안에서 자란 A씨는 커오면서 잔소리를 들은 적이 거의 없다. 참기 힘들 정도다. 집사람에게 장모님 잔소리가 너무 심하다고 토로를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저 정도는 약과야. 나 어릴 땐 더 심했어"뿐이다.
◇운전대만 16시간 '전국 일주'…돌아오는건 "왜 친가부터 가?"
서울 영등포구에 살고 있는 회사원 정모씨(36). 그는 명절 때면 전국을 순회한다. 고향 본가가 전북 전주고 처가는 대구다. 서울에서 출발해 전주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다시 대구로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대충 계산해도 1000킬로가 넘는다.
명절만 되면 20시간 이상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한다. 이동하는 시간을 잘못 잡아 막히기라도 하면 걸리는 시간은 예상할 수가 없다. 정씨는 "명절이 지나고 나면 손목이 아파올 지경"이라고 말했다.
아픈 손목을 주물러 달라고 하면 돌아오는 것은 핀잔뿐이다. "명절 음식 준비하느라 고생하는 건 나인데 왜 너를 안마해줘야 하냐." 왜 처가부터 안가고 친가부터 갔냐, 시댁 식구들이 너무 힘들게 한다 등등 투정도 다 받아줘야 한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회사원 B씨는 본가에서는 이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집사람의 강력한 요구로 이제는 명절에는 본가가 아니라 처가에 간다. 집사람과 애는 미리 처가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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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 못가는 것도 서러운데 서울 사는 처남을 태우고 가달라고 해서 일단 "그러마"했다. 처가가 경남이라 9시간 정도 걸릴 것을 예상하고 처남과 둘이서 교대로 운전하면 되겠지 했다.
그런데 막상 같이 가보니 처남은 운전면허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B씨는 "9시간을 혼자 운전하고 내려가는데 명절에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뭔가 불편한' 처가집 식구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오모씨(40·결혼 9년차)는 이번 추석 연휴가 닷새인데도 본가에서 하루, 처가에서 하루만 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서울 집에서 보낼 예정이다. 처가 식구들과 부대끼는 게 싫어서다.
오씨 본가는 아들만 둘이다. 명절에 모이면 조용히 차례만 지내고 온다. 집안 사람들 모두 평소 북적대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처가는 1남3녀나 된다. 애들까지 모이면 집안이 더욱 번잡하다.
오씨는 "처가 식구들은 모이기만 하면 영화를 보러간다 공원에 놀러간다 나서는데 안 따라 갈수도 없고 곤욕"이라며 "처음 결혼했을 때는 처가 식구들 북적대는 거 수발들다가 싸움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결혼한 회사원 신모씨(28·여)는 이번 추석 닷새 연휴를 생각하면 신난다. 전북 전주 시댁에서 "전도 다 부쳤고 홍어회 삭혀놨으니 어서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평소 좋아하던 홍어회를 생각하면 입에 침이 다 고인다.
그러나 남편만 생각하면 안쓰럽다. 유독 술이 약한 남편 황모씨(35)는 명절에 경북 안동 처가만 가면 뻗는다. 술을 좋아하는 처가집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주는 '폭탄주'를 견뎌내질 못하기 때문이다. 신씨는 "설날에도 남편이 만취해서 사경을 헤맸다"며 "주량 센 처가를 만나 안쓰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