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이홍훈 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

"법조인들의 윤리가 약화된 것은 이 사회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가 강화되면서 자기 삶에 대한 절제력이 많이 부족해진거죠. 사회 전체적으로 도덕성이 약화되는 측면도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대법관 퇴직 이후 법조인들의 윤리 확립을 위해 일하고 있는 이홍훈 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69·연수원 4기)은 최근 불거진 '에이미 검사' 사건 등 반복되는 법조인 비리 문제를 이 같이 진단했다.
이 위원장은 법조비리 근절과 법조윤리 확립 등을 목적으로 출범한 법조윤리협의회의 4대 위원장이다. 대법관 출신이 위원장을 맡은 것은 이 위원장이 처음이다.
이 위원장은 "법조윤리가 확립되지 않고 법조인들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지 못한다면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 자리 잡기 쉽지 않다"며 "법치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꽃을 피울 수 있는데 여기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자리를 맡게 됐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대법관으로 재직 시절 소수자 보호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은 이른바 '독수리 오형제' 중 한명이다.
이 위원장은 "균형 잡힌 사회를 만들기 위해 판사가 됐다"고 했다. 유신 시절 판사생활을 시작한 그는 "판결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초석을 마련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그 자리에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의 판결은 최근 철도노조 파업으로 다시 세간에 회자됐다. 이 위원장은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주심을 맡아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파업이 이뤄져 사업운영에 큰 혼란과 손해를 초래하는 경우에만 비로소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이 위원장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 소수의견을 내기도 했다.
4대강 사업을 중단해 달라며 시민단체와 해당지역 주민들이 낸 사업집행정지신청은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이 재판에서 이 위원장은 소수의견을 통해 "사업시행으로 수질오염 등이 발생할 경우 사업지역 인근에 거주하거나 한강을 상수원으로 삼는 재항고인들의 생명이나 건강이 침해될 것이고 이러한 피해는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고 일단 수질이 오염되면 이를 회복하기가 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반대 의견을 냈었다.
-이 위원장이 대법관으로 근무하며 내린 판결이 아직도 많이 회자된다.
▶의미있는 판결도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제일 기억에 남는 판결은 형사항소부 단독판사 시절 사건이다. 택시운전수가 집행유예 기간 중 술을 마시고 자신과 헤어지자고 한 여자를 찾아가 소주병으로 위협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 남자에게 아이가 2명 있었는데 학교선생님이 "아이가 아빠가 없어 생쌀을 먹고 있다"고 진정을 냈다. 법정에서 확인해보니 그게 사실이더라. 피해자도 처벌을 원치 않았지만 공소장을 바꾸지 않는 한 이 사람은 실형을 살 수밖에 없었다. 법관으로 정말 큰 고뇌를 하다가 검사한테 공소장을 바꿔달라고 했다. 이 검사가 박주선 의원이었는데 사정을 보고 공소사실을 변경해줬다. 나중에 아이가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그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벌써 30여년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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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윤리협의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국민들이 많다. 협의회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협의회의 근본적인 목표가 법조윤리 확립이다. 일부 법조인들이 비리사건은 법조계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저하시켰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2007년 협의회가 생겼다. 협의회는 기본적으로 법령제도 및 정책에 관한 협의, 법조계 실태 분석, 법조윤리 위반에 대한 대책, 징계개시 신청과 수사개시 신청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법원행정처장 3인, 법무부 장관 3인, 대한변호사협회장 3인 추천으로 9명의 위원이 꾸려져 위원들의 협의로 일이 진행된다.
-법조인이 갖춰야할 윤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법조인은 어쨌든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직역이다. 국가가 인증해서 판사, 검사, 변호사 자격을 주는데 여기에 맞는 사명과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권, 사회정의 실현, 자유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기본적 양식에서 벗어나는 성추문 검사, 벤츠여검사 이런 사건들은 부끄러운 일이다. 법조인들이 사회 흐름에 빠져들지 말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나라가 어렵고 힘들수록 법조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협의회가 출범한지 7년째인데 법조계에 어떤 공헌을 했다고 생각하나.
▶협의회는 진정이나 청원이 접수되면 예비적 조사를 통해 위원회에서 각 기관에 징계 개시를 요구하거나 수사의뢰를 한다. 출범 이후 전관예우를 근절하는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본다. 지난해에는 전관예우 금지법을 위반한 변호사 11명을 적발해 징계요구를 하기도 했다. 상당히 의미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까지는 상징적인 역할이 큰 것으로 보인다. 윤리를 강조하는 조직이 출범한 만큼 법조인들 스스로 조심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관예우 금지법이 최초 적용된 사람이 이 위원장이다. 억울하지 않았나.
▶법관 생활 마치고 고향으로 농사지으러 내려갔다. 등산을 40여년간 다니며 자연이 제일 큰 스승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거의 5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니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 사실 법관은 항상 절제된, 수도승 같은 생활을 해야한다. 일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퇴임하고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공익활동이 다 마무리되면 다시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고 있다.
-최근 공익 활동이나 후학 양성에 힘쓰는 법조계 인사들이 많아졌다. 위원장도 화우 공익위원장을 맡고 있다.
▶과거에는 퇴직하면 조용하게 자기 사건을 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지금은 법조인들이 사익만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사회나 국민들의 시각도 부정적이고, 법조인으로서 본분에 맞느냐는 생각을 해서 크게 어려움이 없으면 변호사 개업을 하는 대신 학계로 가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다. 공익 활동에도 많이 참여하고 계시고,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법조인으로 인해 피해 받은 사람이 신고할 수 있는 공간이 협의회 홈페이지에 있는데 실제로 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적어 보인다.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안그래도 이번에 그런 지적을 들어 법원, 검찰 등에 협의회를 소개하는 홍보물을 배포하고 있다. 또 변협 연수프로그램에 협의회가 참여해 윤리교육을 하기도 한다.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자연스레 홍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협의회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협의회가 독립기관인데 아직 사무실이 없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상근직원은 너무 적다. 결국 예산 문제가 아닐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