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세월호 참사' 21세기 대한민국의 '비현실적 현실'

지난달 17일 평소 존경해마지 않았던 인물이 지구 반대편에서 숨을 거뒀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향년 87세. 콜롬비아 아라카타카 태생. 기자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애칭은 '가보'.
그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장은 세월호 사고로 황망해하던 마음을 또 다시 뒤집어 놓았다. 왜 슬픈 일들은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연이어 닥치는 것인가.
지금도 난 그의 소설을 처음 접했던 그날을 기억한다. 세로읽기로 쓰여진, 일본 번역서를 재역한 ‘백년 동안의 고독’. 누런 종이와 그 바래진 냄새는 스물 몇 해가 지났지만 또렷하다. 그 기억은 평생에 있어 며칠 안 되는 중요한 날의 기억이다. 그 책은 그만큼 좋았다. 돌이켜보면 글을 써서 밥벌어 먹기로 결심한 것도 그 날의 기억 때문이었다.
이후 가보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찾아 읽었다. 그의 글은 평범한 밥벌이 기자의 질 낮은 눈으로 보기에도 남달랐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 밀란 쿤데라, 조제 사라마구, 토니 모리슨 등 많은 위대한 작가들은 그의 글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한다.
가보는 흔히 ‘마술적 사실주의’의 선구자로 불린다.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문체로 인간과 세상에 대해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가보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딱히 구분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세상이 그만큼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폭력과 빈곤이 지배하는, 불법과 반칙이 난무하는 세상. 거짓이 참을 이기고, 몰상식이 눈을 가리는 세상.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상상이란 말인가.
남미의 군사정권들이 수천 명의 양민학살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가보’에게는 현실이 곧 상상이고, 상상이 곧 현실이었다. 그래서 가보는 노벨상 수상 기념연설문에서 "문학 표현 양식뿐 아니라 가공할 만한 현실 때문에 상을 받았다"고 했다.
자기 작품은 종이 위 현실이 아니라 불행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창조물의 실제 현실이며, 그것이 창작의 샘물이라 상상력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비현실적인 현실이 있는데 뭘 더 상상하겠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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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소설가로서 가보는 그렇게 글을 썼다.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 현실 비판을 마술처럼 녹여 넣었다. 콜롬비아와 멕시코 두 나라의 대통령과 국민들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예를 갖춰 배웅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그 '비현실적인 현실'을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상상 속에서도 상상하기 싫었던 비극.
이 비극을 겪는 과정에서 언론은, 기자들은 국민들로부터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불릴 만큼 전락했다. 아니, 사실 그동안 전락해 왔지만 이 참사를 통해 널리 알려진 것뿐이다. 부끄러운 속살이 들켰다. 급기야 공영방송인 KBS 보도국장이 참사 관련 발언 논란으로 물러나고, 사장이 보도통제를 했다며 사퇴를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마도 나를 포함해 이 나라의 많은 언론 종사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괴감과 회의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직업을 선택한 자신을 책망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밤마다 "난 '기레기'인가, '기자'인가"를 수없이 자문하고 있을지 모른다. "언젠가부터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기 전까지는 직업을 말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후배 기자의 얼굴을 대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자초한 것이다. 언론은 지난 수년간 나타났던 불신의 징후들을 애써 무시해 왔다. 그리고 이젠 무뎌지기에 이르렀다. 이제라도 무언가를 해보자고 하기엔 너무 멀리 왔을지 모른다.
가보는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정치적 망명길을 택했다. 오로지 글을 쓰기 위해서. 유럽 대륙을 떠돌며 기사와 소설로 남미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했다.
문득 가보는 지금 우리에게 벌어진 '비현실적인 현실'을 보며 어떤 글을 썼을지 궁금해진다. 부디 편히 영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