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실종된 단원고 2-8반 담임교사 김응현씨, 14일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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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이후 한시도 잊지 못했다. 간절히 돌아오길 바랐지만 280여구의 시신이 발견되고 한 달이 다 되도록 선생님은 실종상태였다.
선생님은 가슴을 졸인지 29일째가 돼서야 돌아왔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14일 발견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시신 5구 중 한 명이 단원고 2학년 8반 담임교사인 김응현(44·과학)씨로 밝혀졌다.
김씨의 시신은 이날 오후 2시12분쯤 세월호 4층 선수 좌현에서 발견됐다.
5년 전 김씨의 제자라고 밝힌 이모씨는 "친구들끼리 '선생님께서 스승의 날 전에는 돌아오시겠지'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면서 "정말 그 날에 맞춰 오실 줄은…"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많이 늦어졌지만 시신이라도 찾은 게 다행"이라면서도 "하필 스승의 날에 이렇게 선생님을 뵙는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김씨의 제자라고 밝힌 한 트위터리안도 "마지막까지 (세월호 안의) 제자들과 있어주시느라 (우리에게는) 이제서야 나온 것 같다"며 가슴 아픈 심정을 밝혔다.
또다른 트위터리안은 "살아 생전 스승의 날에 찾아뵙지 못했는데 마침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며 "동문·동창들과 퇴근 후에 함께 찾아뵙겠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김씨의 전 근무지였던 수원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의 제자들은 생전의 김씨가 항상 유쾌해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교사였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김씨의 또다른 제자인 이모씨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지루해하면 자동차 와이퍼처럼 양팔로 칠판을 요란하게 지우며 밝고 재미있는 분위기를 만드려고 하셨던 게 기억난다"며 "학생들에게 시를 읽으면서 노래를 불러주시기도 했었다"고 설명했다.
제자 신모씨는 "언젠가 다른 선생님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가니 쫓아가서 그 선생님이 수업하는 반의 문을 두드리며 장난스럽게 티격태격하시기도 했다"며 "그렇게 재미있는 분이어서 학생들을 많이 웃게 해주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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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성격의 김씨는 한편으로 학생들을 성의있게 대하고 아버지처럼 속 깊이 다독여주던 교사이기도 했다.
제자 A씨는 "화학식을 배울 때 이해가 너무 안 되서 귀찮게 느껴지실 정도로 계속 물어본 적이 있었다"며 "그럼에도 기초 개념부터 시작해 이해가 될 때까지 설명해 주시던 분"이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제자 B씨는 "학생회 일을 하며 선생님과 대화할 때면 항상 학생이라도 존중받는 느낌이었다"며 "의견·푸념·고민상담이든 뭐든지 학생들의 말을 다 들어주시던 분이었다"고 말했다.
제자 C씨는 "부모님과 마찰로 '꿈이 다 뭐냐'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며 "그 때 선생님이 매년 첫 수업에 하시던 '진로인성교육'을 들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수업을 듣고 얼마나 용기가 나고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선생님 덕에 꿈을 잃지 않았었다"면서 "아직도 세상에는 선생님의 그 수업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은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교사의 친형은 동생을 그리워하는 제자들의 목소리에 대해 "본인 성격상 그렇게 학생들에게 잘 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원래 부모님이나 형제, 다른 사람에게도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던 동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동생은 평소 성격이 세심하고 꼼꼼했으며 어릴 때 몸이 약했지만 공부는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였다"면서 "당시 집안 사정 때문에 원래 지망하던 대학을 못 갔을 정도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제자들이 애타게 기다렸던 선생님은 스승의 날 직전에 돌아왔다. 때로는 스승이었고 아버지였던 그는 이제 더 이상 제자들에게 농담과 격려의 말을 전해주지 못한다.
김씨의 빈소는 15일 새벽 안산제일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김씨의 거주지는 수원이지만 마지막까지 제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안산에 안치됐다.
고인의 시신은 17일 오전 10시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될 예정이다. 발인은 같은 날 오전 7시30분에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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