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안산에서 국회까지 40km 행진 무사히 마쳐…시민들 박수·응원 이어져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
"괜찮았니 얘들아." "돌아와줘서 고마워 사랑해." "힘내라 수고했어."
서울시내 한복판이 어린 학생들이 쓴 노란 우산으로 덮였고, 시민들은 눈물 어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안타까움과 눈물, 다짐과 희망의 1박2일이었다.
정확히 3달 전 오늘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소중한 친구와 선생님을 잃은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16일 40km에 달하는 도보행진을 마치고 안산 집으로 돌아갔다.
단원고 2학년생 38명과 학부모 10명은 전날 오후 5시쯤 단원고에서 출발해 이날 오후 3시30분쯤 국회의사당에 도착하는 약 46시간에 걸친 대장정을 무사히 마쳤다.
전날 경기 서울시립청소년복지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학생들은 이날 오전 9시쯤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행진을 다시 시작했다. 시민 300여명도 이들의 뒤를 따랐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도 친구들의 죽음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이들의 앞길을 막진 못했다. 몇몇 학생들은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행진 도중 큰 부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어떤 물리적 충돌도 없이 평화롭게 행진이 진행됐다.
학생들은 중간중간 행진을 멈추고 찬 음료와 부채, 우산으로 더위를 식히고 서로 썬크림과 모기약을 발라주면서도 씩씩한 표정으로 행진을 이어갔다. 이들의 손엔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할게'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등이라고 적은 A4용지 크기의 노란 깃발이 쥐어져있었다.
이들이 시내 한복판을 줄지어 이동하는 동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시민들이 뜨거운 박수로 응원했다.

아이들도 응원에 가세했다. 구로중학교 학생회 10여명은 점심시간을 할애해 '미안합니다'.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노란 종이를 들고 형누나 언니오빠들을 응원했다. 인근 어린이집 영아들도 선생님들의 인도 하에 거리에 나와 고사리손으로 박수를 치며 힘을 실었다.

어른들의 표정은 갖가지였다. 일렬로 서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아주머니들, 등산복 차림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드는 할아버지, 손을 부여잡는 할머니들, 점심식사 차 밖에 나왔다가 "화이팅"을 외치는 직장인들까지 모두 학생들을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학생들은 당당하고 의젓하게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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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 일행은 예정보다 조금 늦은 오후 1시쯤 사회적 기업 '아주 건강한 속삭임'에서 정성껏 마련한 점심식사를 했다. 조리장 장관제씨(38)는 "울면서 불고기덮밥과 5가지 반찬을 만들었다"며 "별 도움이 못 되지만 음식이라도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아이들에게 좋은 일만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은 식사를 마친 뒤 오후 2시쯤 같은 건물에 위치한 대안학교 '사람사랑나눔학교' 학생 30여명의 박수를 받으며 다시 행진에 나섰다. 이들 중 10명도 행진에 동참했다.

오후 들어 더위는 더 극심해졌지만 목적지인 국회에 가까울수록 시민들의 박수소리는 더욱 커졌고, 행진 행렬은 더 길어졌다. 학생들은 국회의사당이 시야에 보이자 "우와 저게 국회야?" "드디어 다 왔다"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화이팅!" 학생들은 오후 2시45분쯤 여의도공원에서 한 차례 휴식을 취한 뒤 책가방에서 각자 써온 손편지를 꺼내 학생대표에게 전달했다. 3시10분쯤 드디어 국회 인근에 들어섰다.

'성역 없는 국정조사', '돌아와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시민들은 국회의사당 앞 길 양옆에 늘어서 이들을 맞았다. 아이들에게 말없이 쇼핑백을 손에 쥐어주기도 하고 만들어온 음료를 건네기도 했다. 몇몇 학생들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생존 학생들은 노란 꽃잎이 흩뿌려진 길을 따라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 도착해 농성 중인 유가족들을 만났다. 김형기 세월호 가족대책위 수석부위원장은 "너희들을 따라온 시민들이 너희 힘이다"며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것밖에 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지만, 그만큼 친구들을 위해서 더욱 열심히 살자"고 말했다.

이들은 편지를 전달하고 손에 쥐고 온 노란 깃발을 국회 담장에 꽂았다. 깃발엔 '애들아 힘내 잘 다녀와!' '사랑해' 'REMEMBER 0416' 등 친구들을 향한 메시지가 검은 펜으로 젹혀 있었다. 가족대책위 관계자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정치적으로 비치길 원치 않기 때문에 국회의사당 안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후 3시35분쯤 학생들은 국회 앞에서 미리 도착해있던 관광버스를 타고 안산으로 떠났다. 시민들과 유가족들은 손을 흔들며 눈물로 이들의 앞길을 축복했다.
한 시민은 "정부는 정말 필요한 진상규명은 외면한 채 생존 학생들의 대학 특례입학이나 유족 사고 보상금만 부각해 진심을 왜곡하고 있다"며 "이 아이들이 마음의 짐을 덜고 죄의식을 갖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생존 학생들을 태운 버스가 떠난 뒤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한 유가족은 "애들한테 고맙기도 하고 저 자리에 없는 우리 애를 생각하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