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오전 한 때 보슬비가 내린 동작구 상도동 주택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만 하루가 지났지만, 주민들의 표정은 여전히 무거워 보였다.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질문에는 너나없이 깊은 한숨부터 몰아쉬었다. 주민들은 저마다의 인연을 언급하며 '상도동 어른'이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한국사회 민주화의 버팀목이던 '거산', 김 전 대통령은 상도동에선 '인자한 어른'으로 남아있었다.
주민 고모씨(63)는 종종 새벽 산책길에 김 전 대통령을 만나곤 했다. 10년간 이곳에 살았다는 고씨는 "악수하고, 등을 두드려주던 손이 참 따뜻했다"며 "싫은 기색 한번 없이 웃음으로 대해주셨다"고 했다.
고씨 품에 안긴 어린 손녀딸이 "대통 할비"(대통령 할아버지)라며 옹알이하자, 고씨의 입가에도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고씨는 "김 전 대통령은 나라의 대통령이기도 했지만, 우리 동네에선 어르신, 부모같은 존재였다"며 "영부인과 커플룩을 입기도 해 보는 사람들도 미소짓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서거 소식은 옆집 주민에겐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김 전 대통령 사저 옆집에 거주한다는 전모씨(40·여)는 "'할아버지' 때문에 오셨나"며 먼저 말을 건넸다.
전씨에게 김 전 대통령은 "항상 힘을 주는 분"이었다. 전씨는 "출근길에 우연히 뵈면 '학생', '미인'이라고 하시면서 기분 좋은 말씀만 해주셨다"고 말했다. 주변에 농담 건네기를 즐기는 생전 김 전 대통령 특유의 친근한 성격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전씨는 또 "삶에 힘이 부치다가도 (김 전 대통령을) 만나면 힘이 났다"고 했다. 1994년에 대학을 입학했다는 전씨는 1997년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채용 인원을 대폭 줄이면서 이른바 'IMF세대'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 세대다. 그러나 전씨는 "IMF 등 과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화 등 성과는 존경받을만하다"고 평했다. 이어 "결과를 떠나 본인의 신념에 따라 살았던 모습은 우리 아이들도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30년간 상도동에 거주했다는 어모씨(87)는 김 전 대통령과 비슷한 또래다. 그는 "이 동네에선 범죄는 커녕 술 먹고 고함치는 사람 한 명 없었다"며 "김 전 대통령 덕분에 상도동이 조용하고 살기 좋은 동네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어씨는 "경호원들이 있었지만, 주민들을 막는 등 위압적인 모습은 볼 수 없었다"며 "산책길에 만나면 당신이 드시던 과자를 주민들과 나눠 먹기도 했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이 우리 동네 사니까 왠지 주민들도 힘이 났다. 대통령이 되시고 주민들을 청와대 초청까지 하지 않았나"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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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씨(81·여)는 "개인보다 나라를 위해 애쓰던 분"이라며 김 전 대통령 서거를 아쉬워했다. 이씨는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김 전 대통령을) 부정부패 없는 깨끗한 분, 사적인 이익보다 나라 전체를 생각하시는 분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일도, 힘든 일도 많았지만, 오로지 국민들을 위해 애 많이 쓰신 점은 분명하다"며 힘주어 말했다.
주민들은 인자하면서도, 개인보다 나라를 위해 애쓰려는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을 현 정치인들도 본받았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모씨(85·여)는 "나라를 위해 평생 고생하신 분"이라며 "여·야를 막론하고, (다른 정치인들도) 개인 욕심을 내려놓고 오직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