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과 배임]②'범죄와 오판'사이…어디서부터 죄일까?

[무능과 배임]②'범죄와 오판'사이…어디서부터 죄일까?

박보희 기자
2016.01.27 08:42

[the L리포트]"법 적용 엄격하게…경영판단 고려해야"

◇ 더엘(the L) /'범죄와 오판'사이…어디서부터 죄일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배임죄를 둘러싼 논란의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배임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모호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지적이다. 재계에서는 경영상 필요에 의해 내린 선택을 결과가 좋지 않다고 죄로 볼 수는 없다며 배임죄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배임죄에 제한을 두면 재벌 등 경영자의 방만경영을 막는데 한계가 있다고 항변한다. 회사돈을 마음대로 써 피해를 입혀놓고 경영판단이었다는 이유로 넘어갈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규정 구체화 필요" vs "방만경영 심해질 것"

형법 355조는 배임을 '타인의 사무를 대신 처리하는 자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이득을 취득하거나 제3자가 이를 취득하게 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행위'라고 정의한다. '업무상 배임'에 대해서는 '업무상 임무에 위배하여 355조의 죄를 범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적용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업무상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유·무죄가 나뉜다. 임무를 제대로 행했는지, 일부러 손해를 끼칠 판단을 내렸는지, 잘 하려고 했는데 잘못해 손실을 끼친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닌지 등을 판단해야 하는데 입증이 쉽지가 않다.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업무상 배임인지 경영상 판단인지는 검찰의 자의적 판단의 여지가 크다"며 "이를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 기업 경영 활동에 대한 과도한 형사적 개입은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회사가 손해를 봤다고 경영자를 처벌하면 어떤 경영자가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겠느냐"며 배임죄 개정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경영 활동에 형사적 개입은 자율성과 창의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논란이 이어지자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배임죄 처벌 요건을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한 때'로 규정하고 있다. 손해를 끼칠 목적과 고의성이 있을 때만 처벌하도록 명시한 것이다.

법률가들은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에도 배임죄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법안 개정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배임죄 법안 자체가 사문화되고 방만경영이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상돈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기업 경영 과정에서 신용파괴, 권한남용 등 분명히 형사처벌이 필요한 행위가 존재한다"며 "개정은 불필요하지만,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영상 판단이 배임죄 여부를 판단하는데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일태 동아대 로스쿨 교수는 "지금 법으로 충분하다"며 "다만 너무 폭넓게 적용하는 것은 문제로 엄격하게 적용해 순기능을 살려야 한다.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경영판단을 평가하고, 미필적고의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상법에 명문으로 규정하고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상법상 특별배임죄 성립을 부정하도록 상법개정안을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독일 "배임죄 엄격 적용"-미국 "성실·공정했다면 무죄"

배임죄를 법으로 정해놓은 곳은 대륙법을 따르는 독일과 일본 등이 있다. 한국 역시 대륙법을 따른다. 영미법을 따르는 미국은 배임죄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임무위배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역시 배임에 대해서 처벌을 한다는 이야기다.

허 교수는 "독일계 법제를 따르는 40여 나라는 배임죄를 두고 처벌하고 있다"며 "단순배임죄를 처벌하는 나라는 적지만 업무상 배임죄의 경우에는 전세계적으로 처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초로 배임죄를 규정한 곳은 독일이다. 배임죄가 독일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이어져 온 만큼 독일과 한국의 관련 법률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독일은 법을 적용할 때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주식법에는 배임여부를 결정할 때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된다. 회사 업무에 관한 이사의 결정이 적절하고 합리적인 방법이었다고 인정되면 의무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

일본은 배임죄 구성 요건으로 △타인을 위해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자기 혹은 제3자의 이익 또는 본인에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임무에 위반한 행위를 하고 △본인의 재산상 손해를 가했을 때로 명시하고 있다.

영미법을 따르는 미국은 배임죄를 따로 두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연방법 '우편사기죄'에서 배임과 배임수재 등을 다루고 있다. 이 규정은 공적·사적·상업적 관계에 대해 의심스러운 행위를 처벌하고 사취할 계획이라는 조항이 포함돼있어 실제 손해발생의 입증없이 사취 계획 및 의도 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다만 경영자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성실하게 판단을 내렸고 과정이 공정했다는 점이 인정되면 기업에 손실이 났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상법에 두고 있다.

이 기사는 더엘(the L)에 표출된 기사로 the L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고 싶다면? ☞ 머니투데이더엘(the L) 웹페이지바로가기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