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전 오늘… '흑인 인권의 아버지' 영면하다

48년 전 오늘… '흑인 인권의 아버지' 영면하다

이슈팀 진은혜 기자
2016.04.04 05:45

[역사 속 오늘]1968년 4월4일, 흑인 해방운동 펼치며 평등의 가치 설파한 목사 마틴 루터킹 피살

연설 후 관중에게 인사하는 마틴 루터 킹 목사. /사진=위키디피아
연설 후 관중에게 인사하는 마틴 루터 킹 목사. /사진=위키디피아

1968년 2월, 마틴 루터 킹이 고향 애틀랜타의 에버니저 교회 연단에 올라 입을 열었다.

"내가 죽거든 나를 위해 긴 장례를 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긴 조사(弔辭)도 하지 말아 주십시오...마틴 루터 킹은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기 위해 애썼으며 인간다움을 지키고 사랑하기 위해 몸 바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염원이 담긴 이 연설은 킹 목사의 유언이 돼 버렸다.

48년 전 오늘인 1968년 4월4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괴한의 총을 맞아 사망했다.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시의 한 모텔 발코니에서 파업한 흑인 청소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발생한 일이다.

용의자는 모텔에 잠입해있던 테네시 출신의 인종차별주의자 제임스 얼 레이. 킹 목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은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선포했다.

예상치 못한 암살은 아니었다. 그를 없애기 위해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사람을 보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었던 상황. 소문을 접한 노동자들이 그에게 피신을 권고하자 킹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오래 살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단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고 싶다"며 소신을 밝혔다.

살해 위협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건 그의 꿈 때문이다. 킹 목사에겐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1929년 침례교 목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경찰의 인종차별적 처사에도 당당하게 맞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고 항의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킹 목사는 일생을 흑인과 백인이 동등한 세상을 만드는 데 헌신했다.

보스턴 대학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교리와 영생에만 골몰하는 근본주의적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종교의 사회 참여에 주목했다. 이후 흑인 인권 운동에 적극 나섰다.

흑인에게 불리한 법률과 제도를 수정하고 공민권법·투표권법을 개정하여 흑인의 권리를 증진시키는데 이바지했다. 킹 목사는 그 공을 인정받아 196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가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건 아니다. 킹은 유독 FBI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FBI는 흑인 해방 운동과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펼치는 그를 위험인물로 분류하고 그의 뒤를 캐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운동 노선을 두고 흑인 이슬람 지도자 맬컴 엑스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과격한 운동을 추구하는 엑스에게 비폭력주의를 고수하는 킹 목사가 백인과 타협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토록 다사다난했던 그의 삶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1963년 8월23일 노예 해방 100주년 기념 '내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이다. 인종 차별 철폐와 공존이란 가치를 호소한 이 연설은 큰 공감대를 얻고 20세기 미국을 관통하는 명연설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그 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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