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효순이·미선이 사건


더위가 본격 시작되던 14년 전 오늘(2002년 6월 13일), 중학교 2학년생 심미선, 신효순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국도 옆 갓길을 따라 걸었다. 언덕 넘어 300미터 가량만 더 가면 친구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날 의정부로 놀러 갈 예정이었다. 다음 날에 있을 효순의 생일을 축하할 겸 모이는 자리였다. 두 소녀들 뒤로 미 보병 2사단 44공병대대 소속 차량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차량은 맞은편에서 브래들리 기갑 전투차량 5대가 오자 중앙선을 넘지 않기 위해 갓길 쪽으로 차를 붙였다. 도로 폭(3.3m)보다 사고 차량의 폭(3.65m)은 더 넓었다. 장갑차는 갓길을 덮쳤다. 갓길에 있던 효순과 미선은 장갑차에 깔리고 말았다. 두 소녀의 웃음소리로 채워진 도로는 이내 참혹한 사고 현장이 돼 버렸다.
경기 양주시 효촌리 56번 국도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고로 온 국민은 비탄에 잠기고 만다. 사고 당일 미8군 사령관이 유감의 뜻을 전했고 다음날 미 보병 2사단 참모장이 분향소를 직접 방문했다. 그들은 유가족에게 유가족과 배상금을 전하는 등 사고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사고 차량 운전병이나 관제병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이란 아쉬움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두 죽음에 대한 아쉬움은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다.
미군 측이 검찰의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는 등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인 것.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소파·SOFA)도 도화선이 됐다. 소파 협정 제22조 3항에 따르면 가해자 쪽인 미국이 재판권을 가진다. 대한민국 법무부가 7월 10일 사상 처음으로 미국 측에 재판권 포기 요청서를 보냈지만 미국 측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그 해 11월 동두천 캠프에서 열린 군사재판에서 미 군사법정 배심원단이 기소된 미군 2명에게 공무 중 발생한 과실사고임을 근거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국민의 공분을 살 것을 예상한 미군 측이 평결 이후 11월 27일 사죄 성명을 발표하지만 분노를 다스리기엔 역부족이었다.
11월 30일, 효순과 미선을 추모하기 위해 1만여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모였다. 추모제는 1주일 간격으로 계속됐다. 12월 7일에는 5만 개, 12월 14일엔 10만개의 불빛이 광화문을 채웠다. 소녀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시를 쓴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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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계기로 2012년 5월 한국과 미국은 소파에 대한 개정에 합의하고 범죄 피의자인 미군 관계자의 신병을 기소 전 한국 당국에 인도할 수 있도록 협정 운용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다음은 신경림 시인의 효순·미선 13주기 추모시 '다시 그날은 오는데'의 한 구절.
효순이 미선이 너 귀여운 우리의 딸들을/우리가 이 땅에 되살려야 할 유월이 왔구나.
이제 거꾸로 너희가 별이 되어/우리 갈길을 가리켜주는 유월이 왔구나.
우리의 꿈을 지켜주고/쓰러지려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다시 그날이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