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2008년 8월8일 개막 베이징올림픽서 8개 金…'단일 올림픽 최다기록'


“8, 8, 8 이건 운명이에요!”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400m 혼계영이 끝난 직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광판을 확인한 청년이 크게 포효했다.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은 미국의 수영 국가대표 선수 마이클 펠프스였다.
2008년 8월17일 펠프스가 세계 수영 역사를 새로 썼다. '단일 올림픽 8관왕', '8개 종목 신기록'.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단일 올림픽 8관왕'이라는 진기록은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마크 스피츠(미국)가 세운 ‘단일 올림픽 7관왕’을 36년 만에 뛰어넘은 것이었다.
8개 종목에서 모두 신기록을 달성했다는 점은 메달의 가치를 높였다. 펠프스는 △남자 개인혼영 400m(4분03초84) △계영 400m(3분08초24) △자유형 200m(1분42초96) △접영 200m(1분52초03) △계영 800m(6분58초56) △개인혼영 200m(1분54초23) △혼계영 400m(3분29초34) 등 7개 종목에선 세계 신기록을, 접영 100m(50초58)에선 올림픽 신기록을 경신했다.

펠프스의 수영 인생은 운명처럼 시작됐다. 어린 시절 ‘펠피시’(Phelps+selfish)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제멋대로 행동하던 그는 병원에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진단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7살 펠프스를 수영장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펠프스는 물을 두려워 하는 아이였다. 물속에 얼굴을 담그는 것도 무서워 자유형이 아닌 배영부터 시작했다.
11살 만난 밥 보우먼 코치는 펠프스의 남다른 잠재력을 알아봤다. 그는 펠프스의 어머니에게 "아들을 올림픽에 출전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말대로 펠프스는 2000년 15살 나이로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됐다. 하지만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선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접영 200m에선 자신의 개인 기록은 경신했지만 5위에 그쳤다.
그로부터 5개월 뒤 펠프스는 접영 200m에서 최연소 세계 신기록(15세 9개월)을 세우며 잠재적 ‘수영 황제’의 면모를 드러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선 금메달 6개, 은메달 2개 등 메달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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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프스가 올림픽에서 활약하는 사이 그의 별명 ‘펠피시’(Phelfish)는 의미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물속을 지배하는 그를 물고기에 비유해 ‘펠피시’(Phelps+fish)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달성한 최고 자리는 독이 돼 돌아왔다. 2009년 대마초를 피우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고 집에 틀어박혀 비디오 게임에만 빠져살기도 했다. 슬럼프를 이기지 못한 펠프스는 2012년 런던 올림픽(금메달 4개, 은메달 2개)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수영에서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을 이뤘다"는 게 은퇴 이유였다.
이후 펠프스는 카지노에서 도박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고 심각한 도박중독이라는 논란이 확산됐다.
2014년 복귀를 선언했지만 5개월 만에 음주운전으로 보호관찰 18개월을 선고받았고 미국수영연맹은 그에게 6개월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다.
방황하던 펠프스를 바로잡은 건 그의 수영코치 밥 보우먼이었다. 펠프스는 이후 각종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2016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권까지 따냈다.

결과는 금메달 5개(남자 접영 200m, 개인혼영 200m, 계영 400m, 계영 800m, 혼계영 400m), 은메달 1개(접영 100m). 또 한번의 역사를 쓴 순간이었다. 국내외 언론들은 펠프스가 너무 많은 금메달을 따 포상금으로 인한 세금 폭탄을 걱정해야 할 정도라고 보도했다.
펠프스는 이번 리우올림픽을 끝으로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3개월 전 태어난 아들 부머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다는 이유도 들었다.
2000년부터 총 5회의 올림픽에 출전한 펠프스는 올림픽에서만 총 28개 메달을 손에 쥐었다. 고대 올림픽과 근대 올림픽을 통틀어 한 선수가 딴 최다 메달이다.
펠프스는 "누군가가 내 기록을 깨주기를 바란다"며 작별 인사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