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오늘… 세월호 닮은꼴 '서해페리호' 침몰

23년 전 오늘… 세월호 닮은꼴 '서해페리호' 침몰

이미영 기자
2016.10.10 05:56

[역사 속 오늘]전복사고로 292명 사망… 221명 정원에 362명 타, 선박 안전문제 '도마'

1993년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사진=나무위키
1993년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사진=나무위키

사람들은 들떠 있었다. 단체로 낚시여행을 왔던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육지로 갈 배를 기다렸다. 이 곳 주민들은 김장철을 앞두고 잡은 멸치와 멸치액젓을 육지에서 팔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 기대감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이들을 싣고 육지로 향하던 '서해페리호'가 위도 부근에서 갑자기 뒤집어졌기 때문이다. 23년전 오늘(1993년 10월10일) 전북 부안군 위도 부근에서 292명이 바다에 수장된 대형 선박사고가 있었다.

일명 서해페리호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고는 선박 관리 미비, 인력관리 부실, 해양경찰 등 정부의 늑장대응 등 2년 전 일어난 세월호 침몰사고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해페리호는 전라북도 부안과 격포사이를 오가던 여객선이다. 1990년 일본 한 선박회사의 여객선을 본따 설계해 만들어진 비교적 '신형' 여객선이었다. 이 배는 110톤급 철선으로 길이 33.9m, 폭 6.2m에 평균 시속 12노트로 운항됐다.

사실 이 배는 이용객이 많지 않아 매해 적자에 허덕였다. 격포 주민들이 유일하게 육지로 나가는 수단이었기에 국가보조금을 받으며 겨우겨우 운항됐다. 하지만 격포가 낚시 관광지로 각광받으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하루에 1번 운항되는 이 배에 올라 격포로 주말 낚시를 하러 갔다.

텅텅 비던 배에 갑자기 사람들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승무원 14명을 포함해 정원 221명이었던 이 배에는 정원이 초과되기 일쑤였다. 사고가 난 이날은 평소 주말보다도 사람들이 넘쳐났다. 낚시꾼들도 낚시꾼들이었지만 김장철을 맞아 멸치를 팔러나가는 주민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배에는 362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사고 후 확인됐다.

설상가상으로 이날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다. 파도가 2m가 넘어 배를 운항하기 힘든 날씨였다. 출항을 연기하려 했지만 육지로 나가려는 승객들의 요구가 빗발쳐 예정대로 운항됐다.

하지만 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배 앞으로 쏠린 승객들의 짐과 수 톤의 멸치액젓 통은 배의 중심을 흔들었다. 300명이 넘게 탄 배에 안전요원이 2명밖에 배치되지 않았고 갑판장이 휴가를 간 항해사의 역할을 대신 하는 등 배 안은 그야 말로 '통제 밖'이었다.

결국 9시40분에 출발한 배는 30분 만에 돌풍을 만나면서 선장은 다시 격포로 회항을 결정했다. 하지만 끝끝내 돌아올 수 없었다. 뱃머리를 돌리면서 중심을 잃은 서해페리호는 결국 뒤집어졌기 때문이다.

옆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들은 재빨리 조난신고를 하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 헬기와 군경함정 등이 도착하기 전 1시간 동안 이들은 승객 40명의 목숨을 구했다. 이후 이날 밤 10시까지 진행된 구조작업에선 70명이 목숨을 건졌고 51명의 시신을 인양했다.

이후 진행된 구조작업에서는 더이상 생존자를 찾지 못했다. 5일 동안 진행된 현장 구조작업과 선박 인양을 통해 밝혀진 사망자는 총 292명. 당초 예측한 승객수 140명을 훌쩍 넘었다.

당시 사고 후 분위기가 사고 원인보다 책임자 색출에만 열을 올려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선장과 승무원들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자 이들이 홀로 탈출해 살아남았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언론사들도 이 소문을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이들을 비판하고 나섰고 정부 당국은 실제로 이들을 수배해 찾아 나섰다.

하지만 10월15일 이들은 선박 통신실에서 발견됐다. 당시 이 사실을 접한 유족들은 기자들과 정부를 향해 "살아있다고 했으니 살려내라"며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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