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10년 부부싸움, 건조기·스타일러 덕에 끝냈어요"

[MT리포트]"10년 부부싸움, 건조기·스타일러 덕에 끝냈어요"

심재현 기자
2018.03.28 05:31

[新가전이 삶을 바꾼다②]의(衣)

[편집자주] 대부분 하얀색이어서 '백색가전'이라고 불렸던 가정용 전자제품. 과거엔 냉장고 세탁기 TV가 고작이었고 색깔만큼이나 기능도 단순했다. 하지만 가전제품은 이제 환경과 욕망의 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개념의 '신(新)가전'으로 진화하면서 우리들 삶의 질을 높여가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10년차 맞벌이 부부 한민국씨(41)·김이경씨(40)는 가사노동을 두고 10년 가까이 이어온 신경전을 올 들어 끝냈다. 큰 맘 먹고 장만한 '가전 콤비', 빨래건조기와 스타일러 덕이다.

지난해까진 네 식구가 매일 쏟아내는 빨래를 주말에 처리할 때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한차례 세탁을 하고 빨랫줄에서 옷이 마르길 기다렸다 다시 세탁기를 돌리려면 모처럼의 주말이 온통 빨래에 묶여있는 것 같았다. 혹여라도 세탁과 건조 타이밍을 놓쳐 평일로 빨래가 밀리기라도 하면 다툼꺼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한씨는 "200만원이 넘는 돈을 들였지만 이만한 돈을 쓰고 이만큼 만족해본 가전은 처음"이라며 "이런 신세계를 왜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나 싶다"고 했다.

신(新)가전 시대다. 160여년 전 기계의 힘으로 '옷을 빤다'는 발상에서 처음 등장한 세탁기가 빨래 이후의 자연식 건조 과정을 대신하는 건조기와 물빨래 자체를 탈취와 살균으로 대체한 의류관리기기 '스타일러'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세탁기의 보조제품으로 틈새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건조기와 스타일러가 필수가전 자리를 넘보기 시작한 것이다.

◇ '빨래 노동의 해방' 세탁기의 시작= 기계적 의미의 세탁기는 1851년 미국의 제임스 킹이 발명한 실린더식 세탁기에서 시작했다. 이보다 70년 앞서 영국의 헨리 시져가 1782년 세탁물을 돌릴 수 있는 나무 막대와 손잡이를 갖춘 세탁통을 만들었지만 세탁기라고 부르긴 아쉬웠다.

가정용 세탁기의 시초는 1874년 윌리엄 블랙스톤이 아내의 생일 선물로 고안한 세탁기에서 찾는다. 원심력을 이용해 손으로 통을 돌려 세탁하는 방식이었다.

전기세탁기는 1908년 미국의 알바 피셔가 발명한 전기모터 드럼통이 원조다. 곧이어 1911년 미국의 메이텍과 월풀이 자동세탁기를 개발하면서 오늘날 개념의 세탁기가 대중화됐다.

국내에선 1969년LG전자(113,400원 ▼4,600 -3.9%)의 전신인 ㈜금성에서 출시한 1.8㎏급 '백조세탁기'가 효시였다.삼성전자(173,500원 ▼14,700 -7.81%)도 1974년 '은하수'를 생산하면서 세탁기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대우전자가 1988년 세탁기 시장에 발을 들이면서 국내시장은 한동안 가전3사 경쟁구도였다.

세탁기에는 빨래라는 가사노동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킨 20세기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자동세탁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빨래는 가장 힘겨운 가사노동 중 하나였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그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서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에 더 큰 변화를 일으킨 발명품"이라고 언급했다. 가사노동이 여성의 몫이었던 시절 세탁기의 발명이 여성의 경제·사회활동을 앞당겼다는 분석이 적잖다.

오늘날 세탁기는 AI(인공지능)와 결합하면서 한번 더 진화 중이다. 지금까지 때를 잘 빼는 방법을 두고 공기 방울, 세탁봉, 은나노 같은 방식이 등장했다면 이젠 더 똑똑하고 더 편리한 세탁기를 만드는 기술이 총동원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18일 폐막한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음성인식 AI서비스 '빅스비'가 탑재된 세탁기를 선수촌에 지원했다. 음성인식 서비스와 IoT(사물인터넷) 기능으로 말만 하면 작동하는 신개념 세탁기는 오는 29일 공식적으로 첫선을 보인다.

삼성전자 3도어 올인원 세탁기 '플렉스워시'. /사진=이기범 기자
삼성전자 3도어 올인원 세탁기 '플렉스워시'. /사진=이기범 기자

◇ 세탁 보조 가전의 역습…기술·환경의 변화= 건조기와 스타일러는 세탁기의 자매품으로 시작해 최첨단 세탁기마저 뒷방으로 밀어내고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한 신가전의 선두주자다. "건조기를 한번도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써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유행일 정도다.

가전업계에 따르면 2016년만 해도 10만대에 그쳤던 국내 건조기 판매량은 지난해 60만대로 급증한 데 이어 올해는 100만대를 바라본다. 국내에서 의류관리기기를 사실상 유일하게 생산하는 LG전자는 올 들어 지난 26일까지 스타일러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고 밝혔다.

두 제품의 인기는 가전몰이나 홈쇼핑, 온라인 쇼핑사이트에서도 확인된다. 신세계백화점이 신세계몰에서 올 들어 이달 25일까지의 가전제품 매출신장률을 집계한 결과 스타일러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5% 이상 올랐다. 120만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제품 인기가 치솟으면서 유통업계에선 주문에서 수령까지 3~4주가 걸린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전문가들은 신가전의 부상을 기술 발전과 환경 변화가 맞물린 결과로 본다. 당장 미세먼지와 황사가 연중 골칫거리로 등장하면서 의류관리기기와 건조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특히 건조기는 TV 광고를 하기 전부터 입소문을 타고 블로그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먼저 '핫템'이 된 사례다.

기술의 발전도 수요를 이끌었다. 2016년 LG전자가 전기료를 크게 낮춘 '인버터 히트펌프' 건조기를 출시하면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LG전자가 지난해 말 출시한 듀얼 인버터 히트펌프 건조기의 경우 세탁물 5㎏을 표준코스 에너지모드로 건조할 경우 전기요금이 117원에 그친다.

냉매로 주변 온도차를 만들어 습기를 빨아들이는 히트펌프 방식을 적용해 뜨거운 바람에 옷감이 상할 우려를 줄인 것도 시장 수요로 이어졌다.

건조기 시장의 후발주자인 삼성전자는 지난달 시중에서 판매되는 건조기 중 가장 큰 9㎏급보다 용량을 55% 키운 14㎏급 건조기 '그랑데'를 출시, 이불 건조까지 노린 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올 하반기 의류관리기기 시장에도 뛰어들 것이라는 관측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과 환경의 변화로 건조기, 스타일러 같은 새로운 가전이 TV,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에 이어 가전시장의 신(新)격전지가 됐다"고 말했다.

LG전자 의류관리기기 '스타일러'. /사진제공=LG전자
LG전자 의류관리기기 '스타일러'. /사진제공=LG전자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심재현 특파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