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무심(無心)했던 시각장애인 기사…"눈 감고 몇 발자국만 걸어봤으면"


새벽 5시, 눈이 번쩍 떠졌다. 알람도 안 맞췄는데, 심지어 토요일인데. 체헐리즘 기사를 예약한 시간은 새벽 6시30분, 그 직전엔 나도 이리 괜히 싱숭생숭했다. 라이브(Live) 공연을 앞둔 가수 맘이 이럴까. 기사 취지는 고스란히 알아줄까, 댓글은 뭐라 달릴까, 취재는 잘한 걸까, 더 필요한 말은 없었나. 꼬리에 꼬릴 무는 생각들.
지난주 토요일(20일)엔 맘이 더 쓰였다. 그날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 체험 기사가 나갈 예정이었다. 흰지팡이를 빌려, 눈을 감고 바깥을 다녀봤었다. 아늑했던 집안과 동네는 낯설고 무서워졌다. 그렇게 며칠 보행 연습을 하고,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를 다녀왔다. 따스한 봄이니까, 시각장애인도 나들이를 가고 싶을 거란 생각에. 그 정도는 홀로 다닐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여정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파김치가 됐다가, 감은 눈에 왈칵 눈물이 고였다. 현실을 너무도 모르고 살았단 생각에.
그걸 잘 알리고 싶은 맘에, 애정을 평소보다 더 많이 쏟았다. 기사 마감 후에도 고민이 계속됐다. 자정이 넘어가도록 퇴고하고, 영상도 만들어서 붙이고. 기사 제목은 후보를 몇 개 정해놓고, 팀원들에게 투표를 부쳤었다. 원래 제목은 '눈을 감고 벚꽃축제에 갔다'였다. 이걸 '눈을 감고 벚꽃축제를 보러갔다'로 바꿨다. '을-를'이 운율감이 있단 제언에. 그러고도 '눈을 감고'와 '눈 감고' 중 뭐가 나은지, ‘벚꽃축제’와 그냥 ‘벚꽃’ 중 뭐가 더 좋을지 고민을 거듭했다. 생각에 지칠 만큼.
이유가 있었다. 장애인을 주제로 쓴 기사는, 독자들 관심이 적었다. 이미 9년차 기자인 나는, 그걸 잘 알았다. 일종의 감(感)이었다. 아니, 그게 경험으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장애인 기사는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묻혔다. 거의 잘 안 봤다. 그래서 일찌감치 수습기자 때부터 고민이 참 많았다. 어떻게 하면 관심을 갖게 할까. 흥미로운 접점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수동 휠체어를 직접 탄 뒤 기사를 쓴 것도, 이 같은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어쨌거나, 어스름한 새벽에 깨서 뜬눈으로 지켜봤다. 시각장애인 기사가 표출되는 순간까지. 그리고 변태처럼 내 기사를 들락날락했다. 누르고, 뒤로 가기를 누르고, 다시 누르고. 한 300번쯤 본 것 같다(세보진 않았다). 그렇게 반응을 살폈다. 아침 8시가 다 되도록, A 포털 사이트에선 댓글이 하나도 없었다. B 포털 사이트에선 메인 화면에 올라왔는데도 반응이 거의 없었다. '아, 이 기사는 많이 좀 봤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에 맘이 초조해졌다. 취재했던 시각장애인들 생각이 나니 더 그랬다.

쓰러져가는 기사에 '인공호흡'을 하기로 했다. 일단 제목을 바꿔보기로. '눈을 감고 벚꽃축제를 보러 갔다'가 원래 제목인데, 이를 '눈 감고 벚꽃축제에 갔다'로 바꿨다. 소심(小心)해서 많이 바꾸지도 못했다. 그리고 다시 기다렸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정오가 넘어가고, 점심을 먹었고, 오후를 보내고, 저녁을 먹을 때까지도.
자사 홈페이지에선 조회 수가 안 찍힐 만큼 안 봤다. 5000명도 안 봤단 뜻이었다. A 포털사이트는 조회 수가 1만5000여건, 댓글이 46개(4월25일 기준)였다. B 포털사이트는 댓글이 15개 정도 달렸다. 이 정도면, 지금껏 나간 30여개의 체헐리즘 기사 중 가장 안 본 축에 속했다. 결과는 냉담했다. 그나마 C 포털사이트에서 잘 본 게 작은 위안이 됐다. 많은 이들이, 시각장애인들 힘듦에 공감해줬으면 했던 기대가 허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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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사대천명(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운명에 따름)'인 건 잘 알지만, 그래도 울적했다. 맘을 많이 쓴 기사라 더 그랬다. 멍하니 초점이 나간 채로, 잘 보는 기사들을 보며 괜히 시샘했다. 그리고 자아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다. '아니, 휘O 녹취록 기사가 더 중요한가', '임OO 폭로는 대체 왜 잘 보지?' 이러면서. 그리고 깊은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잖아' 하면서. 이어 자책도 했다. '제목을 더 잘 달았어야 했는데', '기사를 더 잘 썼어야 하는데.'

그날 점심, 뷔페서 폭식을 하며 스트레스를 그리 풀었다. 초밥 위에 초밥을 쌓고, 그 옆에 다시 초밥을 쌓았다. 고기 위에 고기를 쌓고, 다시 그 옆에 고기를 예쁘게 장식했다. 한식과 양식, 일식이 한데 어우러지는 근본 없는 접시 비우기가 이어졌다. 식사 세 접시, 디저트 세 접시를 싹 다 비웠다. 쾌락이 지나치면 고통이 된단 옛 윤리 선생님 말씀을 떠올리며,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며, 집에 와서 낮잠을 늘어지게 잤다.
그러고도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왜 장애인 기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까.' 잠에서 깰 때쯤 다시 골똘히 마음이 쏠렸다. 돈을 벌고픈 직장인은 재테크 기사에, 취업준비생은 채용 관련 소식에, 반려인은 강아지·고양이 기사에, 병(病)을 앓는 이는 건강 정보에 관심이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삶과 관련이 있고, 내게 필요하고, 좋아하니 쉽게 공감(共感)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기사는 그게 잘 안 됐다. 별다른 '접점'이 없었던 것이다. 비장애인이란 이유로, 장애인에 무심(無心)했다. 시각장애인에 무관심한 건 앞이 보여서, 지체장애인에 시선이 안 가는 건 내가 잘 걸어 다닐 수 있어서, 청각장애인을 잘 모르는 건 귀가 잘 들려서. 그건 어찌 보면 자연스런 일이었다. 정작 나도 체험하기 전엔 그랬으니까, 잘 몰랐으니까.

'접점'이 없다면 만들면 어떨까.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눈 감고, 딱 열 걸음만. 한 번 내딛어보면 어떨까. 한 걸음은 쉬 나갈 것이다. 두 걸음도 무난하다. 세 걸음까지도 괜찮고, 네 걸음부터는 멈칫하게 될 것이다. 다섯 걸음째엔 맘이 쫄아들기 시작한다. '내 앞에 뭐가 있을까', '부딪치진 않을까'. 여섯 걸음부터는 손으로 주위를 더듬게 될 것이다. 시각을 제외한 감각들이 곤두선다. 그렇게 더 걷다보면 숨이 거칠어지고,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그냥 걷는 일일 뿐인데도. 그게 시각장애인들의 삶이다. 홀로 보행하는 것조차 힘들다. 그러니 주위에서 볼 수 없게 됐다.
"누군가를 짐작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인간(人間)적인 일"이라 했다.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 말이다. 그 말이 참 좋았다. 그래서 기자 이메일 아이디도 human(사람)이라고 정했다. 다행히, 회사에 쓰는 사람이 없었다. 기뻤다.
만원 지하철을 타면, 옆 사람 어깨가 들썩이는 게 느껴진다. 숨을 들이마실 때에도, 내쉴 때에도. 그 리듬에 따라, 내 어깨도 절로 움직인다.
그렇다. 우린 함께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