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에 2800억 배상"…정부 10년 다툼 '선방'

"론스타에 2800억 배상"…정부 10년 다툼 '선방'

심재현 기자
2022.08.31 09:59

10년만의 판정, 론스타의 교훈①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2800여억원을 물어주게 됐다. 론스타가 2012년 외환은행 매각을 두고 정부를 상대로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청구한 손해배상 국제소송의 판정 결과다. 당초 배상금액이 6조원대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선방'한 결과다. 다만 정부가 국제소송에서 수천억원대의 배상금을 지급한 전례를 찾기 힘든 데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2, 제3의 론스타 소송이 잇따르면서 국가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면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법무부는 31일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사건 중재 판정부가 우리 정부에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의 4.6%인 2억1650만달러(약 2800억원·환율 1300원 기준)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고 밝혔다. 중재 판정부는 또 론스타가 소송을 제기한 2011년 12월3일부터 완제일까지 한 달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에 따른 이자도 배상하도록 했다. 이자 비용은 약 200억원으로 추산된다. 총 3000억원가량을 배상하게 되는 셈이다.

ISDS란 외국 투자자가 상대방 국가의 법령이나 정책 등에 따라 이익을 침해 당했을 때 국제법에 따라 해당 국가를 상대로 ICSID 등 국제 중재기관에 중재를 신청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834억원에 사들였다가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원에 매각한 뒤 한국 정부의 매각 승인 지연과 가격 인하 압박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그 해 11월 46억7950만달러(약 6조3136억원) 규모의 ISDS 소송을 제기했다.

중재판정부의 결정은 론스타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부당한 심사 지연이나 가격인하 압박은 없었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ISDS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정부의 주장이 예상보다 폭넓게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김남근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의해 진행된 ISDS에서는 국가 정책의 정당성은 고려하지 않고 투자자가 피해를 받는지 여부만 따져 판정을 내놓는다"며 "국내법으로는 산업 자본으로 분류되는 론스타가 은행을 인수할 수 없었던 것과 별도로 '한국 정부 때문에 외환은행 매각 시기가 늦어져 손해를 입었다'는 론스타의 주장이 일부만 인용된 것 같다"고 말했다.

중재판정부가 결정한 배상금이 론스타가 2020년 11월 소송 취하 합의금으로 제안했다고 알려진 8억7000만달러(약 1조1700억원)의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는 점에서 정부의 부담도 한결 덜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안 써도 될 돈을 국민 세금을 들여 지급하게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규모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중재판정부와 사무국에 지급한 중재절차 비용, 정부 대리 로펌 법률 자문 비용 등으로도 469억2000만원을 썼다.

정부는 판정 결과를 면밀하게 분석해 판정 취소 신청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취소 신청을 접수하더라도 판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1966년 ICSID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55년 동안 133건의 취소 신청이 접수됐지만 20건만 전부 또는 일부 인용되고 79건은 기각됐다. 나머지 34건은 취소신청 절차가 중단됐다.

법조계 한 인사는 "이번 판정 이후 삼성물산 합병 관련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소송 등 현재 진행 중인 6건의 다른 투자자-국가간 소송에 미칠 영향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적용되는 법리가 복잡한 사안이라 다른 국제 소송 당사자들도 론스타 결과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학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를 누군가의 책임론으로 몰고 갈 게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 금융시스템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고개를 든다. 2003년 론스타를 산업자본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내려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부여했을 때의 잘못을 돌아보고 시장 개방에 따른 정책과 법령을 더 명확하게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제통상 분야 교수는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시스템이 대가를 치른다는 게 다시 확인됐다"며 "지금이라도 면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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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기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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