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부터 재개발단지 버려진 식물 300여개 살려낸 '공덕동 식물유치원'
백수혜 원장님과 '유기식물 구조'…흔둥이·잡초로만 알던 식물들의 이름
"버리지 말고, 골목과 이별하는 축제 열어 필요한 이들과 나누었다면 어땠을까요"

작은 초록이 움을 틔웠다. 때마침 햇살이 쏟아졌다. 이파리가 쪼그매 다 받지도 못했다. 새싹은 조급해졌다. 어서 빨리 기지개 켜고 싶어서, 무럭무럭 크고 싶어서. 환희의 비가 내리면 꿀꺽꿀꺽 마시고, 다정한 해가 나면 온기를 채웠다. 시간이 자연스레 흘렀다.
"어머, 새싹이네. 넌 무슨 꽃이니."

누군가 그리 묻기도 했다. 동네 사람이었다. 우리 동네. 새싹이 뿌릴 내려 평생 살게 될. 새싹은 얼른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무엇이 될지.
바람을 품고 바람이 몸을 통과하는 날들이 쌓였다. 더는 새싹이 아니게 됐다. 위로 쭉쭉 뻗어 길쭉해졌다. 모습이 점점 고유해졌다. 기다려왔던 정체성을 드러낼 시간. 그때 누군가 날 부르기 시작했다.
"얘는 뭘까, 꽃인가? 흔둥이네, 흔둥이."

'흔둥이'. 새싹은 그게 제 이름이라 생각했다. 흔해 빠져 그리 부른다곤 생각 못 했다. 어떤 이는 '잡초'라 부르기도 했다. "잡초는 뽑아버려야 하는데." 그런 말이 들릴 때면 우뚝 서 있으려 애쓰기도 했다.
흔둥이는 무럭무럭 컸다. 해와 바람은 조건 없이 감싸주었고, 비는 메마름을 달래주었으며, 땅은 보드랍고도 단단히 지탱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늘어가던 텅 빈 집. 대문엔 '출입 금지'라는 글씨가 빨갛게 적혔다. 폐허 같던 동네는 식물과 동네 고양이의 세상이 되었다. 능소화는 대문을 가로막고 꽃을 피웠고, 가지 칠 일 없는 담쟁이는 창문을 가만히 덮었다.
흔둥이네 집 사람들도 요란한 트럭 굉음과 함께 떠났다. 식물은 싣지 않았다. 빨간 글씨로 '공가'라고 적힌 담벼락 앞에 남겨졌다. 아니, 버려졌다. 쓰레기 더미 사이에.

재개발지역. 그리 폐허가 된 동네에도 남은 생명은 가득했다. 화분만 빼가 덩그러니 눕혀진 나무. 방치돼 있다 메마른 식물. 어떻게든 햇볕을 쬐려 가로로 누워 자라는 녀석까지. 살아남겠단 힘,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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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흰색 플라스틱 화분에 담겨 있던 흔둥이도 살아 있었다. 초록빛을 뿜으며 외치는 듯했다. 여기, 아직 살아 있다고.
그러나 시한부였다. 재개발이 시작될 거였다. 포크레인이 무심히 제 할 일을 할 거였다. 뻔했다, 갈 데도 갈 수도 없는 흔둥이의 운명은.

저벅저벅, 적막한 서울 성북구 재개발구역에 모처럼 발걸음이 분주했다. 언뜻 보기엔 수상한 이들이 모였다. 백수혜씨는 초록 바구니를 들었다. 윤규진씨는 곁을 따르며 도왔다. 정명철씨는 흰둥이라 불리는 스쿠터를 끌며 무언가 옮길 준비를 했다. 함께 살며 수혜씨를 지키는 안전 요원이기도 했다.
땅쪽만 두리번거리며 무언가 찾는 그들을 따랐다. 그때 수혜씨가 쪼그리고 앉았다. 그 앞엔 흔둥이가 있었다. 이따금 부는 봄바람에 살랑거렸다. 살아 있었다. 수혜씨가 반기며 말했다.
"얘는 바위취라고 해요. 호랑이 귀를 닮아 '범의귀'라고도 하고요. 사계절 내내 푸르르지요. 얘는 아마 비비추 같아요."

흔둥이로만 알았던 식물들. 가치 없다 여겨 버려진 존재들. 거기에 이름이, 이야기가, 빠짐없이 다 있었다. 장미나 벚꽃이나 진달래나 개나리가 아녀도 고스란히 알아봐 준 사람. 수혜씨가 호미를 들고 주변 흙을 살살 파내기 시작했다. 우리 '식물유치원'에 입학하자고.

공덕동에 있는 식물유치원. 그걸 만든 원장님이 수혜씨였다. 버려진 식물들이라면 다 입학할 수 있다. 재개발 단지에서 고군분투하던 친구들이 주로 들어온다. 빈집인지, 버려진 식물인지, 확실히 확인한 뒤 구조를 시작한다.
그런데 왜 식물유치원인가요.
"친한 언니가 지어줬어요. '식물유치원은 어때?' 네가 데려온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인 모습을 보니 유치원이 떠오른다면서요."
비비추 주변 흙을 호미로 파내던 수혜씨가 말했다. 뿌리를 달래며 건져내니, 비로소 식물을 품을 수 있게 됐다. 사이에 낀 흙을 툭툭 털고, 신문지 위에 곱게 놓은 뒤, 분무기로 물을 칙칙 뿌렸다. 구조 성공. 버티느라 애썼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걸 시작한 수혜씨 마음도 그랬단다. 2021년이었다. 유령도시 같던 재개발단지를 산책하며 구석구석 숨은 식물들이 눈에 밟혔다.
아스팔트에 덩그러니 놓인 나무 도막에 연둣빛 싹이 있었다. 햇볕을 어떻게든 더 쬐려 가로로 누워 자라고 있었다. 애달픈 작은 생명체에 맘이 쿵 흔들렸다. 그래, 우리 집에 가자고. 식물유치원이 문 연 날이었다.

기자님도 해보시겠냐는 말에 호미를 들었다. 비비추는 흙 밑에 뿌리가 다 연결돼 있어, 쉽지 않을 거라 했다. 다치면 어떡하지, 조심조심하는데 꿈쩍도 안 했다. 별수 없이 힘을 주었다. 잔뿌리가 뜯기는 소리에 움찔했다. 우는 소릴 했다.
"아아, 이거 뿌리 다치면 어떡하죠. 괜찮을까요. 앗, 어어, 미안해, 뜯긴 거 아닌가? 으아."(기자)
"뿌리 모양을 상상하며 삽질하듯 들어 올리시는 거예요. 괜찮아요. 생명력이 강해서, 뿌리가 좀 끊어져도 물에 담가놓으면 금세 새로 납니다."(수혜 원장님)

'풀' 또는 '식물'로 뭉뚱그려 부르던 존재들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묶여 있던 땅에서 하나하나 건져내었다. 뿌리가 기다란 녀석, 알처럼 동그란 친구, 섬세한 잔뿌리가 보드라운 식물. 부추란 말에 향을 맡고, 애기똥풀 이름에 괜스레 웃고, 섬초롱꽃을 볼 땐 다녀왔던 울릉도의 파도 소리를 떠올렸다.
수혜씨도 이름을 잘 몰랐단다. 장미·튤립·벚꽃·단풍·은행·코스모스처럼 유명한 것만 알고, 정작 길에서 마주치는 식물은 잘 몰랐다.
"제가 아는 식물은 정말 극소수란 걸 깨달은 거예요. 화단과 동네 골목 곳곳에 다 있는데도. 다 같은 풀과 나무라고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친 거지요."
그런 풀들은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았다. '길거리 노란 꽃' 이리 찾아보아도 시원스레 찾지 못했다. 뭔지 잘 모를 때 '모야모'란 앱에 물어보니 식물 집사들이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이름을 자주 찾아주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가 생각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리 의미가 꽃핀 작은 식물들. 계속 바라보니 골목 구석구석 초록빛이 가득했다. 그러나 숨소리도 안 들리던 동네란 걸 깨닫고 또 속상했다. 이리 많이도 버리고 갔네 싶어서. 각자 사정 같은 것도 있었겠으나.
천천히 걷던 수혜씨가 메마른 나무 앞에 섰다. 나뭇가지 하나를 살짝 꺾었다. 갈색빛이었다. 설명이 이어졌다.
"살짝 꺾어보고 초록색이 나오면 살아 있는 거래요. 얘는 죽은 거예요. 아마 열대지방서 키우는 애라, 겨울에 죽은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이 버리고 가세요."
이미 말라버렸다. 늦은 거였다. 때론 구조해 데려가도 살아나지 못하기도 한단다.

그리 재개발 지역에서의 구조를 마쳤다. 수혜씨가 식물들을 곱게 놓고, 물을 뿌리고, 신문지에 조심히 싸서 스쿠터에 실었다. 우린 식물유치원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40여분 후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짙은 봄이 거기에 있었다. 마당 곳곳엔, 구해온 식물들로 생기가 넘쳤다. 수혜씨가 원생들 자랑을 시작했다.
"얘네는 재작년에 노량진에서 구조한 해국이랑 국화입니다. 살 때는 분명히 같이 물 주고 꽃 보고 하셨을텐데, 나갈 땐 책임질 사람이 없던 거지요. 남겨져 있길래 데리고 왔어요. 월동도 되는 식물이거든요. 국화는 꽃도 피웠어요. 얘는 작년에 은평구 재개발구역서 데려온 인동덩굴이에요. 뿌리가 뽑히며 잘려서, 죽은 거 아니냐고 걱정했는데…."

그런데 봄은 봄이었단다. 뜻밖의 기쁨처럼 싹이 환히 터졌다. 인동 꽃이 예쁘다고 해 기다린단다. 그리 말하는 수혜씨 표정이 꽃처럼 맑고도 밝았다.
이날 데려온 바위취, 비비추, 부추, 냉이 등 식물들을 마당에 펼쳤다. 그새 축 늘어진 건 물에 넣어주고, 화분에 심을만한 건 보드라운 흙을 채워 꾹꾹 눌러주고. 좀 전까지 깨진 유리 더미나 쓰레기 사이에 섞여 있던 식물들이 더는 아녔다. 이리 뿌듯할 수가.

해와 바람이 잘 드는 소담한 마당. 유치원에서 이리 회복하고 무럭무럭 자란다. 때가 되면 졸업식을 연다. 잘 키워줄 보호자에게 보내주는 것. 그리 졸업한 원생들이, 4년 차가 된 지금 300여 개가 넘는단다.
"첫 졸업생은 재개발 단지에서 데려온 알로카시아였지요. 구하기 어렵거나 값비싼 식물이 아니라 무관심하면 어쩌나 염려도 했는데요. 입양하겠다고 띠롱띠롱 알람이 울리더라고요.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는 분도 많고, 사연이 있어 좋다는 입양자도 있고요. 우리집보다 더 잘 지내라며, 안녕, 하고 인사했지요."

정글 같은 재개발 단지를 부단히 다니는 사람. 왜 돌아다니느냐고, 당신 무슨 환경 보호 단체냐고, 행여 재건축 늦어지면 책임질 거냐고 으름장까지 들으며 버려진 식물을 품는 식물유치원 원장님. 수혜씨도 잘 안다. 개인이 애써봐야 모든 생을 구할 수 없단 걸.
뿌리 내린 자리에서 가만히 살아가는 식물을 볼 땐 상념에 잠긴다. 그걸 보며 버려지기 이전을 상상한단다. 아직은 동네가 북적이던 그 시점으로. 그 동네 주민이라면 어떤 걸 하면 좋았을까. 떠올린 아이디어란 이런 거였다.
"어르신들이 중고마켓 이런 걸 잘 아시면 식물을 나누고 그러실 텐데, 잘은 모르시더라고요. 키우던 식물을 데려갈 수 없는 형편이면 '골목 이별 축제' 같은 걸 열면 어떨까요. 예컨대 내 정원에 무성하게 자란 옥잠화와 비비추를 직접 캐서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거지요."

내 집 마당은 재개발로 사라져도, 식물들은 누군가의 집에서 무럭무럭 삶을 이어가면 좋을 거란 따스한 생각.
거기엔 어떤 이야기도 담겨 있을 거고, 함께 나누어 기억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고.
수혜씨의 그 말에, 애정하는 김연수 작가가 쓴 '너무나 많은 여름이' 소설 속 문장이 생각났다. 철거가 예정된 아파트 단지에 모여 함께 '나무 이름 부르기'를 하던 주민들 얘기였다.
'우리는 한 사람씩 각자 기억하고 있는 나무를 찾아 그 앞에서 사연을 이야기했어. 어느 여름, 매미의 허물을 발견한 곳이라든가, 떨어진 은행을 밟아 며칠 동안 냄새가 지독했던 길이라든가, 일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서 있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들.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준 뒤에는 이름을 붙였어. 내 생애 가장 빛나던 나무. 내 유년기의 친구. 우리들 나무. 나의 신령님. 마지막 흔적들.'

에필로그(epilogue).
취재를 마치고, 은평구 재개발 단지에서 구했다는 흔둥이 '시페루스' 두 뿌리를 입양했다. 직사광선만 안 받게 하고, 정수 정도 온도의 물을 채워주라는 당부를 들었다. 삭막한 회사 책상에 둘 참이었다.
실은 고민 됐었다. 환경이 별로이지 않을까, 더 좋은 곳에 갈 기회를 놓치게 할까 싶어서. 망설이던 내게 수혜씨가 흔둥이(흔히 쉽게 접하는 식물) 이야길 들려줬다. 재개발 지역에서 가장 많이 보인다고. 흔둥이는 데려가 키워도 괜찮을 거라고. 설명이 이랬다.
"어떤 식물은 잡초 같은데 왜 화분에 키우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해요. 하지만 특이하고 예민한 식물이었다면, 재개발 단지에 방치돼 쉽게 죽었을 수도 있잖아요."
흔하니 가치 없다 여겨 버려졌을 수 있겠지만 실은 그 평범함이 꽤 멋지다는 말. 더해진 말에 입양할 용기가 났다.
"흔둥이는 어디서든 잘 적응해요. 변화에 맞춰 잘 살아가지요. 그 어려운 일을, 평범한 것들은 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