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

"탕!탕! 탕!"
1926년 12월28일, 오후 2시쯤 연말을 앞두고 인파로 북적이던 황금로(현재 을지로)에 느닷없는 총성이 울려 퍼졌다. 소리의 진원지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 일제가 조선에 가했던 경제적 수탈의 심장부였던 기관이다.
중국인 상인으로 변장해 한국에 입국한 독립운동가 나석주는 권총과 폭탄으로 무장한 채 조선 경제 수탈의 온상이었던 동척에 잠입했다.
동척은 조선 농지의 3분의 1을 소유·관리하는 거대 회사로, 소작을 부리는 것부터 광공업, 제철, 철도, 금융까지 손 안대는 사업이 없었다.
그는 앞서 동척의 맞은편에 있었던 또다른 조선 수탈기구인 조선식산은행에 들렀던 차였다. 은행에 중국에서 가져온 폭탄을 던지고 자리를 떴지만, 폭탄은 10분이 지나도 터지지 않았다. 불발탄이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나석주는 동척을 찾았다. 회사 입구에서 만난 일본 기자 다카기를 총으로 쏴서 사살했다. 2층으로 뛰어올라 가던 중 동척 직원 다케가 총소리를 듣고 뒤따라오자 쏘아 쓰러뜨렸다. 이윽고 토지개량부를 찾아간 그는 기술과 차장 오모리, 과장 아야다를 쏘아 쓰러뜨리고 폭탄 1개를 투척했다. 아쉽게도 이 역시 터지지 않았다.
시간을 지체했다고 판단한 그는 문밖으로 달려 나오며 옆에 있던 조선철도주식회사 수위실을 공격, 마쓰모토외 1명을 권총으로 쓰러뜨렸다. 나석주는 을지로 2가 방면으로 내달리면서 신고를 받고 출동 중이던 맞은 편 경기도 경찰부 경부 다하타도 권총으로 사살했다.
그는 도망쳤지만 이내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일본 경찰 수십여명에 둘러싸였다. 시내 한복판에서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던 그는 여러 발의 총상을 입은 데다, 체력이 다하자 스스로 가슴에 세발을 쏴 자결을 시도했다.

일본 경찰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지만, 여전히 숨이 붙어있었던 그를 병원으로 실어갔다. 그리고 자꾸 의식을 잃는 그에게 주사제를 놓아가며 정체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10여명의 독립운동가 이름을 대자 그중 하나 '나석주'라는 이름에 그가 응답했다.
"내가 나석주다, 공범은 없다"라는 말을 끝으로 숨이 끊어졌다. 1926년 12월28일의 의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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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제의 조선 수탈 상징과도 같았던 기관이었다. 상징성이 큰 기관을, 그것도 사람이 북적이는 연말 백주대낮에 공격했다는 것은 일본인들을 충격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이에 일본 순사들은 동척 습격 사실을 쉬쉬하는 데 바빴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각 신문에 사건 보도를 금지하고, 전국 은행에 무장 경찰을 배치하기도 했다.
그리고 보도금지 조치를 이어가다 사건 발생 17일이 지난 1927년 1월13일에서야 보도를 허용했다. 당시 경찰은 동척과 식산은행에 던진 폭탄이 불발된 것은 안전핀을 뽑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나석주는 다년간 군사 훈련을 받고 무장단체에서 활동해왔던 인물이다. 날래고 대담하기로 유명했다.
당시 사건을 처음 보도한 동아일보의 1월13일자 호외에 따르면, 나석주를 잡기 위해 1921년 1월4일 이래 동원한 경찰이 연간 만여명은 되고, 통첩 서류나 기타 조회 서류가 수만통에 달했을 것이라는 순사 증언이 있다. 따라서 나석주의 불찰보다는, 중국산 수류탄 자체가 불량이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동척은 한국의 역사 중 일제 강점기를 언급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 이토 히로부미가 설립한 회사다. 이토 히로부미는 1985년 일본의 제1대 내각 총리가 된 후 한국과 일본의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시켜 조선 식민지화의 발판을 깔았다.
또 직접 조선의 초대 통감(총독)으로 부임, 이완용 등 을사오적을 중심으로 하는 내각을 세워 식민 지배의 기틀을 마련했다. 동시에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세워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했다. 인도 제국을 식민지화했던 대영제국의 동인도 회사를 본떠 만들어졌다.

나석주 열사는 황해도 재령군 북율면에 자리 잡은 자영농의 외동아들이었다. 그러나 비옥했던 이 땅은 1909년 조선의 토지 개간과 관리를 명분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세워지면서 일제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나석주의 집안도 자영농에서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동척은 악랄했다. 소작료를 생산량의 50%로 대폭 인상했다. 그것도 그해 생산량의 50%가 아닌, 3년 평균치의 50%였다. 흉년이라도 드는 날엔 소작료로 사실상 그해 소득을 대부분 내놔야 했다. 이 같은 동척의 횡포는 나석주가 독립운동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나석주 의사의 의거는 결국 불발탄으로 인해 실패했다.
동척과 식산은행을 폭파하려던 원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한국 경제 침략의 상징과 같았던 동척을 대낮에 공격해 일본인을 혼비백산하게 한 행동은 일제의 온갖 수탈 속 고개 숙인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기 충분했다.
동척 사건은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다.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배우 손종범이 나 의사 역할을 맡아 폭탄과 권총으로 일본인들을 처단하고, 동척 건물을 폭파하고 경찰과의 총격전 끝에 사망한다. 실제와 달리 극 중에서는 동척 건물을 폭파하는 데 성공한다.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사 건물이 있었던 자리의 현주소는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하나금융지주 본사 사옥(옛 외환은행 본점)이다. 이 앞에 나석주 의사의 의거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