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10월 13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른바 '10·13 특별선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질서 새생활 실천을 위한 국민과의 대화'에서 범죄와 폭력 소탕을 선언했다.
노 전 대통령은 "모든 외근 경찰관을 무장시켜서 범죄와 폭력에 대해 정면으로 대응토록 할 것이다.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은 일회성 조치로 끝나지 않을 것이고, 국민 여러분이 그 불안에서 벗어날 때까지 이것을 지속할 것이다"라고 했다. 또 범죄와 폭력은 물론 민주 사회 기틀을 위협하는 불법과 무질서를 추방하고 과소비, 투기, 퇴폐 향락 풍조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아울러 "정부는 법이 그 권위를 바로 세우고 주어진 기능을 다 하도록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러한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데 미흡하다면 특단의 대책도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흉악범과 재범자에 대해선 강력한 입법과 법 집행 등을 통해 사회로부터 상당 기간 격리시키고, 교도소가 범죄를 배우는 곳이 되지 않도록 교정 대책을 강화할 것이라고도 했다.
유례없는 조직 범죄 소탕에 1992년까지 경찰 약 1만 60000명이 충원되고, 경찰청 보안부는 방범국으로 개편됐다. 보복범죄가 특정범죄가중처벌 대상에 추가됐고 각종 형사관계법을 개정해 마약, 폭력조직, 인신매매, 가정파괴범에 대한 처벌도 강화됐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조직폭력배 1421명을 검거해 1086명이 구속됐고, 274개 폭력 조직이 와해됐다. 대놓고 활동하던 폭력 조직이 대부분 소탕됐으며, 살아남은 조직도 타격을 입고 음지에서 활동하게 됐다. 2년간 이어진 '범죄와의 전쟁' 기간에 살인, 강간, 강도, 절도, 폭력 등 5대 강력범죄 발생률이 이전보다 5.9% 감소하는 성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은 22년 후 영화 소재가 되기도 했다. 윤종빈 감독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비리 세관 공무원 최익현(최민식 분)과 부산 최대 조직의 젊은 보스 최형배(하정우 분)의 이야기를 다뤘다. 두사람은 끈끈한 의리로 함께 부산을 접수했지만,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후 서로의 뒤통수를 치기 시작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유로는 치안 공백, 강력 범죄 증가, 3저 호황에 따른 유흥업 수요 증가로 여성 인신매매 및 납치 등 여러가지가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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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청명계획' 폭로로 어수선했던 정국을 전환할 목적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따르면 '10·13 특별선언' 직전인 1990년 10월 4일 당시 국군보안사령부 분석반 소속 윤석양 이병은 작업 문서가 담긴 플로피 디스크를 들고 탈영해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다. 반정부인사 목록을 만들어 '청명(淸明)' 대상에 올린 후 감시하다가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날 전원 검거한다는 이른바 '청명계획'이 주된 폭로 내용이었다.
이에 분노한 사람들이 시위에 나서 진상을 요구했는데, 혼란스러운 정국에 정권이 위기를 맞이하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국민적 관심사는 '청명계획'에서 '범죄와의 전쟁'으로 옮겨갔고, 신문 1면은 범죄와의 전쟁 관련 보도로 도배됐다. 실제 국민들은 조직폭력배, 강력 범죄에 대한 불안에 떨고 있었던 터라 이를 뿌리 뽑겠다고 나선 노태우 정부는 큰 지지를 받았다.

'범죄와의 전쟁' 선포가 우리나라 치안 안정화에 큰 역할을 했다는 성과가 있는 반면 인권침해라는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실적 압박을 받은 경찰들이 애꿎은 사람들을 범죄자로 몰아 체포한 후 고문 수사와 진술 강요를 하는 일이 잦았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 사건 현장 주변 지역의 남성들이 끌려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폭행, 고문, 협박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범죄율을 낮춘다는 목표하에 불법 연행, 총기 사용의 남용, 무리한 수배자 검거 등이 빈번하게 발생한 것이다.
또 '검찰의 수사 실적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영장 발부를 남용했다' 등의 비판이 뒤따랐다. 당시 대한변호사협회는 "범죄예방을 빙자해 선량한 시민이 부당하게 자유를 억압당하거나 범인을 검거한다는 구실 하에 폭행, 고문 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성명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