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1월14일, 경기 부천 원미구 한 놀이터에서 놀던 초등학생 두 명이 실종됐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고 같은 해 1월30일 부천 인근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이 된 두 학생을 발견했다. 이른바 '부천 초등학생 피살 사건'이다. 경찰의 지지부진한 수사로 자칫 미궁으로 빠질 뻔했던 이 사건은 발생 2년 5개월 만에 다른 사건으로 잡힌 범인이 자백하며 마무리됐다. 당시 범인은 범행에 대해 "그냥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실종 당일 A군(당시 13세)과 B군(당시 12세)은 밤 시간 공놀이하러 나간 뒤 그대로 사라졌다. A군은 실종 전 같은 날 오후 8시50분쯤 수신자부담 전화로 여동생에게 "엄마가 있는 집 근처 PC방으로 간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게 마지막이었다.
경찰은 탐문수사 중 A군과 같은 반 친구로부터 "실종 당일 오후 10시쯤 이들이 성인 남성 뒤를 따라가는 모습을 봤다"고 진술했다. 이에 경찰은 마지막 목격지 일대에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다.
결국 실종 16일 만에 싸늘한 시체가 된 두 초등학생을 야산에서 발견했다.
발견 당시 A군은 누운 상태로 온몸이 발가벗겨져 있었다. 두 손은 손가락이 깍지 끼워진 채 운동화 끈으로 나무에 묶여 있었다. A군 옆에서 발견된 B군도 속옷만 입은 상태였다. 손과 발이 목도리로 묶인 채 잠바 등으로 덮여 있었다.
두 초등학생 몸에는 나뭇가지에 긁힌 자국이 일부 있었지만 특별한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A군과 B군은 실종 당일 살해되었고 범인은 아이들의 등을 밟고 뒤에서 목도리로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범인과 관련된 물증이라곤 학생들 등에 찍힌 범인 운동화 자국 일부 외에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사건 범인은 범행이 발생하고 2년5개월 만에야 밝혀졌다. 그마저도 다른 범죄로 잡힌 범인이 여죄를 자백하며 드러난 것이었다.
2006년 4월22일 새벽 범인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한 주택에 침입했다. 그는 금품을 훔치기 위해 자고 있던 C씨(24) 머리를 둔기로 내리쳤다. 그러나 C씨는 부상만 입은 채 잠에서 깼고 범인과 다툼을 벌였다. 이때 옆방에서 자고 있던 C씨 아버지도 합세했고 결국 제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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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강도로 잡힌 범인은 정남규였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사건 당일 오후 (인천) 집에 있다가 사람을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무작정 버스를 두세번 갈아탄 뒤 내려 만난 초등학생들을 산으로 데려가 죽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처음엔 여자를 성폭행한 뒤 죽이려 했으나 (겨울철인 데다 밤이어서) 거리에 여자가 없어 눈에 띈 이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했다.
검찰은 남부서의 그동안 수사 기록 등을 검토하고 범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범행 과정을 자세하게 진술하고 있으며 자신의 범행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점 등을 들어 범인으로 보고 기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남규는 초등학생 사건을 시작으로 살인에 빠져들었다. 그는 같은 해 1월 30일 서울 구로구에서 4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혔고, 약 일주일 뒤에는 서울 동대문구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했다. 이후 그는 서울과 경기 지역을 돌며 거의 매달 흉기를 사용한 범행을 저질렀고 주로 신체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과 중년 남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경찰에 붙잡힌 정남규는 호송차 안에서 "에이 끝났네 1000명은 죽였어야 했는데 아깝다"고 중얼거렸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는 "지금도 피 냄새를 맡고 싶다. 사람 피에서는 향기가 난다", "(경찰에 잡혀) 더 이상 살인을 못 할까 조바심이 난다" 등 살인 행위에 집착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후 정남규는 살인 등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약 1년의 재판 끝에 그는 최종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정남규는 재판 과정에서 갑자기 검사석으로 돌진하거나 판사를 향해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고 외치는 등 기행을 보이기도 했다.
사형수가 된 정남규는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생활했다. 그는 수감 중에도 살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는 2009년 11월21일 독방에서 자신을 죽이는 선택을 했다.
교도관들은 정남규를 발견해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다음 날 새벽 사망했다. 정남규 빈소에는 오직 그의 매형만이 찾아왔고 유가족 외면 속 정남규 시신은 화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