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이 이미 압류가 걸린 계좌에 잘못 송금된 돈을 계좌 주인의 대출금과 상계한 행위가 권리남용이 아니라는 1심과 2심 판단이 대법원에서도 유지될까. 대법원은 채권자 평등의 원칙과 착오송금 보호 필요성 중 어디에 더 무게를 둘지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은 혜인건강이 "부당이득금 1억2000만원을 돌려달라"며 농협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최근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며 과거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대법원은 2010년 착오송금 사건에서 송금인이 잘못 보냈다며 반환을 요구하고 수취인도 이를 인정해 돌려주겠다고 한 경우라면, 은행이 그 돈을 자기 대출금 회수에 쓰는 상계는 원칙적으로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 또는 권리남용이라고 판단했다. 자금이체 시스템을 운영하는 은행이 이용자의 실수를 계기로 예상하지 못했던 채권회수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보호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예외도 뒀다. 예금채권이 이미 제3자에 의해 압류돼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상계를 달리 볼 수 있다고 했다. 특히 2022년에는 착오송금된 예금채권이 이미 제3자에 의해 압류된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수취은행의 상계가 허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그 경우에도 상계는 피압류채권액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도록 한계를 뒀다.
이 사건 1·2심 법원도 이미 압류가 선행돼 있었고 상계 당시 수취인의 명확한 반환 승낙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2심은 송금인과 수취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라 압류채권자까지 얽힌 채권 경합 문제로 봤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제3자 압류라는 예외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사건처럼 은행이 착오송금 사실을 통지받았고, 송금인이 수취인·압류채권자들을 상대로 별도 소송까지 진행하는 상황을 알고 있었는데도 먼저 상계한 경우까지 기존 판례가 규정한 예외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한 법조인은 "당사자끼리만 문제 되면 당연히 돌려줘야 맞지만, 제3자가 개입되면 문제가 달라진다"며 "착오송금이 되면 송금인은 수취인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채권을 가지게 되고, 은행도 계좌 명의인에 대한 대출금 채권을 가진 채권자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채권자는 평등하다는 게 대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이 예외적 특별사정으로 든 '제3자가 압류한 경우'가 과연 지금 같은 경우까지 염두에 둔 것인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도 "압류된 계좌에 돈이 들어오면 은행 입장에서는 임의로 다시 내보내기 어렵다는 점은 이해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상계 전에 이미 은행이 착오송금이라는 사실을 통지받았다면, 적어도 그 돈이 계좌 명의자의 정상적인 재산이 아니라는 사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런 상태에서 상계한 것을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지는 다시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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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유지하면 압류가 선행된 이상 은행의 상계권은 비교적 폭넓게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원고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이면 '압류 예외' 자체는 유지하되, 은행이 착오송금 사실을 알고도 먼저 상계한 경우까지 예외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보다 엄격한 제한 기준을 세울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