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3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8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박 명예회장은 철강 불모지였던 한반도에 최초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철강사로 성장시켜 우리나라를 철강선진국으로 도약시킨 우리 경제사의 거목이다.
그는 국내 축구에도 기여한 바가 커 축구계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대한중석을 성장시켰던 그는 1960년대부터 축구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1954년 월드컵에 골키퍼로 출전한 함흥철, 1960년대 스타였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단장을 역임했던 한홍기 등이 뛰던 당시 대한중석 실업축구단을 강팀으로 키우기 위해 서울에 숙소를 마련하고 경기장을 제공한 그다.
1960년대 한국에 '스포츠 산업'이라는 것이 가능할리 만무했을 터인데, 그는 그때부터 스포츠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힘입어 대한중석은 국내 최고의 팀으로 거듭났다.
박 명예회장이 대한중석의 성공을 발판으로 종합제철사업에 뛰어들면서, 대한중석축구단은 포항제철실업축구팀으로 탈바꿈했다. 1973년 6월 9일, 포항제철 용광로에서 흘러나왔던 역사적인 한반도 '첫 쇳물'과 함께 포항제철 실업축구팀도 힘차게 태동했다.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덩달아 스포츠 산업도 서서히 모양새를 갖춰가면서 박 명예회장은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그는 스포츠에 있어서 '스타 플레이어'의 중요성을 남들보다 먼저 직시하고, 당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들의 영입을 주도했다. 이에 따라 이회택과 최순호, 황선홍, 홍명보 등이 포항제철에 연이어 입단해 포항제철을 최강으로 이끌었다.
박 명예회장은 프로축구 외국인 선수 1호 세르지오와의 계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는 '스포츠선진국에서 용병을 데려오는 것은 프로스포츠 발전의 디딤돌'이라며 누구보다도 빨리 용병을 영입해 한국축구 발전을 주도했다. 1995년에는 홍명보에게 국내프로축구 사상 처음오로 1억 원의 연봉을 제시하면서 새 역사를 쓰기도 했다.
박 명예회장이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은 단연 '포항 스틸야드'다. 그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앞서 '축구전용구장 하나 없는 나라가 월드컵에 나온다'는 대한민국에 대한 외신 보도에 충격을 받고 곧장 축구전용구장 건립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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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1990년 11월 10일, 포항 스틸야드가 완공됐다. 같은 모기업 산하의 전남 드래곤즈의 홈구장인 광양전용구장도 같은 맥락에서 지어지게 되었다. 두 경기장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수들과 팬들로부터 최고의 경기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박 명예회장이 축구계에 남긴 마지막 선물은 '스틸러스 웨이'였다. 스틸러스 웨이란, 2009년 3월 포항 스틸러스가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축구문화를 정착하고자 팬들에게 선사한 일종의 선언문이다. 플레잉 타임(파울 등으로 끊긴 시간을 제외한 실질적인 경기 시간)을 5분 이상 늘리고, 깨끗한 경기 매너를 지키며, 심판의 권위를 존중하여 판정을 수용하고, 포항스틸러스 선수로서의 자부심을 갖겠다는 등의 네 가지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이는 포항이 2009년 AFC아시아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른 비결로 꼽히면서 큰 화제가 되었고, 다른 팀들에게도 모범이 된 성공적인 사례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포항 스틸러스 김태만 사장은 당시 '스틸러스 웨이는 앞서 나가는 사고와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한국 경제 및 축구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던 박태준 명예회장님께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히며 공을 박 명예회장에게 돌렸다.
이처럼 박태준 명예회장은 한국 경제 발전의 일등공신이기도 하지만, 한국 축구와 더불어 한국 프로스포츠 전체가 비약적인 발돋움을 하도록 이끈 인물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