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인터뷰] 21년 뛴 '레전드' 김정은, 마지막 퇴근길은 눈물로 가득했다

[비하인드 인터뷰] 21년 뛴 '레전드' 김정은, 마지막 퇴근길은 눈물로 가득했다

이원희 기자
2026.05.17 06:22
21년간 여자프로농구 선수로 활약한 김정은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는 WKBL 역대 최다 경기 출전(620경기) 및 최다 득점(8476점) 기록을 세웠으며, 생애 첫 우승과 하나은행의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가장 찬란했던 기억으로 꼽았다. 김정은은 챔피언결정전 진출 실패를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겼고,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지도자의 꿈을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21년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은 김정은. /사진=WKBL 제공
21년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은 김정은. /사진=WKBL 제공
김정은. /사진=WKBL 제공
김정은. /사진=WKBL 제공

"깜깜한 버스 안에서 여기저기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 저도 눈물이 많이 났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21년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은 여자프로농구의 '전설' 김정은(39). 유니폼을 벗은 지 한 달이나 됐지만, 코트 밖의 평범한 일상은 아직 낯선 듯 보였다.

김정은은 15일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아직 실감이 안 난다. '진짜 은퇴한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재활이나 몸 관리에서 해방돼 행복하다"면서 "가족들도 많이 기뻐한다. 그동안 부모님부터 제 동생, 시부모님까지 저와 함께 경기를 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은퇴를 해서) 저보다 제 가족들, 특히 남편이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의 프로 데뷔는 아주 오래 전 일이다. 2006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프로 무대에 입성한 김정은은 이번 시즌까지 무려 21년 동안 코트를 누비며 리그 최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다. 김정은은 "사실 내가 이렇게까지 오래 뛸 줄 몰랐다. 돌아보면 긴 시간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시간이 빨리 간 것 같다. 지금 내 기분이 홀가분함인지, 다른 무엇인지,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선수 생활을 오래한 탓인지 아직도 '내가 정말 은퇴한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미소를 지었다.

사실 김정은은 지난 2024~2025시즌을 마친 뒤에도 은퇴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동료들의 만류로 한 시즌 더 코트를 누비기로 했다. 김정은은 "(돌아보면 그때 선택이) 옳았던 것 같다. 단지 기록을 위해 더 뛴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601경기 출전 기록도 세웠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21일 아산 우리은행전에서 통산 601경기째 코트를 밟으며, 임영희 전 우리은행 코치(600경기)를 넘어 WKBL 역대 최다 경기 출전 신기록을 작성했다. 이후 은퇴 전까지 총 620경기에 출전해 이 부문 최고 기록의 벽을 한층 더 높였다. 또 김정은은 8476점을 넣어 WKBL 역대 최다 득점자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2006년 겨울리그 신인선수상을 시작으로 득점상 4회, 리그 베스트5 6회,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 1회 등 굵직한 트로피를 휩쓸었다.

김정은의  프로 데뷔는 2005년 12월 21일이었다. /사진=WKBL 제공
김정은의 프로 데뷔는 2005년 12월 21일이었다. /사진=WKBL 제공
김정은의 프로필 및 통산 기록. /사진=AI 제작 이미지.
김정은의 프로필 및 통산 기록. /사진=AI 제작 이미지.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 코트에는 김정은을 위한 WKBL 역사상 최초의 '은퇴 투어'가 마련됐다. 그는 "너무 감사했다. 앞서 여러 차례, 또 시상식에서도 언급했는데 첫 은퇴 투어라는 점에서 앞으로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나를 시작으로 후배들의 은퇴 여정이 더 화려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21년의 긴 여정을 두고 "티끌만 한 미련도 없다"고 단언한 김정은이지만, 유일하게 가슴에 남을 만한 아쉬움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올 시즌 챔프전 진출 실패다. 하나은행은 이상범 감독의 지휘 아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정규리그 2위'라는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봄 농구 무대에서 용인 삼성생명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 4월 15일, 용인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4차전. 그 경기가 김정은의 마지막 경기가 됐다. 당시 그는 짙은 아쉬움 속에 코트에 주저앉아 한동안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김정은은 "정규리그 2위라는 최고 성적을 냈지만, 나뿐만 아니라 후배들 모두 챔프전 무대를 간절히 원했다"면서 "챔프전에 가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그때 내가 더 빨리 가서 수비를 도와줄 걸'하는 후회도 밀려왔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시즌 마지막 경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 하나은행 구단 버스 안은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김정은은 "플레이오프 탈락 직후엔 정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불 꺼진 깜깜한 버스 안이었지만,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도 눈물을 많이 흘렸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면서 "후배들의 얼굴을 보고 얘기하기엔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메신저로 '고생했다'는 연락을 보냈다. 그랬더니 선수들 한 명씩 개인 메시지로 답장이 오더라. 후배들의 메시지를 보면서 '아, 그래도 내가 지난 시간 동안 후회 없이 내 모든 걸 쏟아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김정은은 "지난 3년 동안 이 친구들과 참 지지고 볶으며 깊은 정이 들었다. 이 친구들과 추억을 잘 간직하겠다"고 고마워했다.

플레이오프 탈락 후 눈물을 흘린 김정은(오른쪽). /사진=WKBL 제공
플레이오프 탈락 후 눈물을 흘린 김정은(오른쪽). /사진=WKBL 제공

선수 시절 가장 찬란했던 기억을 묻는 질문에 그는 두 가지 명장면을 꼽았다. 먼저 우리은행 시절, 생애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순간이다. 김정은은 "생애 처음으로 우승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면서 "내가 선수로서 가장 성장한 시기도 우리은행에서였다. 위성우, 전주원 감독님께 많이 배웠기 때문에 항상 감사드린다. 우승 커리어는 물론, 훈련 과정에서도 배운 것이 워낙 많았다. 그 내공들이 쌓이면서 하나은행 복귀 이후 더 책임감을 가지고 후배들을 이끌려고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잊지 못할 순간으로는 2023~2024시즌 하나은행의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떠올렸다. 김정은은 "당시 압도적인 승률을 찍은 건 아니었지만, 그 과정을 이뤄내기 위해 후배들과 참 많이도 지지고 볶았다. 마지막에는 부상자도 많아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결국 플레이오프에 올라갔다"고 했다.

김정은(가운데)과 부천 하나은행 선수들. /사진=WKBL 제공
김정은(가운데)과 부천 하나은행 선수들. /사진=WKBL 제공
부천 하나은행 선수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WKBL 제공
부천 하나은행 선수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WKBL 제공

반면 유일하게 남은 짙은 미련은 역시 이번 시즌 챔프전 문턱에서 좌절한 것이다. 김정은은 "평소 하나은행 후배들에게 '내 농구 인생 최고의 순간은 우리은행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을 때였다. 올해 너희들과 함께 그 최고의 순간을 새롭게 고쳐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며 "결국 그 간절한 바람을 이루지 못해 두고두고 가슴에 남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김정은은 당분간 휴식을 취하려고 한다. 하나은행 구단으로부터 코치직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정중히 고사하고 자신을 채우는데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김정은은 "1년 정도 한 템포 쉬고 가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 생활 마지막 3년간 많이 몰입하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몸도 마음도, 정신적으로 많이 소진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잠시나마 쉬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은퇴 투어에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김정은. /사진=WKBL 제공
은퇴 투어에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김정은. /사진=WKBL 제공

하지만 지도자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김정은은 "위성우 감독님을 비롯해 여러 감독님을 겪으면서 지도자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 많이 느꼈다. 그래도 지도자에 대한 꿈은 분명히 있다. 다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도 나이가 들수록 더 크게 느꼈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책임감을 가지고 지도자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제 남편도 운동선수 출신인데, 제게 '네가 그 안에 있으니까 빛나는 것이다. 그 안에서 나오면 굉장히 작은 존재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면서 "저도 농구계에서는 나름 인정받으며 살아왔지만, 어떻게 보면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셈이다. 그래서 주위를 많이 둘러보고 견문을 넓히고 싶다. 언젠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반을 잘 닦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사진=WKBL 제공
김정은. /사진=WKBL 제공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