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공시..."명분과 남용"
"코스닥에 경위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취재하게 된 동기 등을 말씀해 주십시오."
기자는 최근 한 코스닥 등록업체로부터 취재동기를 취재당해야 했다.
'다음주에 이사회를 개최한다'는 취재 기사가 나가자마자 코스닥증권측이 곧바로 공정공시 위반소지가 있다며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기업은 부랴부랴 기사내용을 공시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뒤에야 괘씸죄(?)를 면하고 경위서 제출을 면제받았다.
또 다른 등록기업 역시 지난주말 기사내용에 대해 코스닥증권시장으로부터 '소명서'를 제출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해당기업은 "기자가 취재해서 쓴 내용을 어떻게 일일이 공시하며, 기자가 무슨 내용을 기사화할지 어떻게 미리 아느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공시되지 않은 내용이 기사화 된 이상 일단 소명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코스닥증권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공정공시는 말 그대로 모든 투자자들에게 공평하게 기업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시행됐다. 시행 열흘이 지난 시점에서 정보의 균등 제공이라는 취지가 오히려 '제대로 된' 정보의 급감이라는 결과로 변질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기업들은 언론의 취재에 소극적으로 응하거나 아예 거부하고 있다. 일반투자자들은 언론을 통해 여과되고 보강된 투자정보 대신 지극히 일방적인 공시만을 통해 투자판단을 할수 밖에 없게 됐다. 반면 실적과는 별 상관도 없는 단신성 자료는 공정공시라는 이름으로 투자자들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문제의 중심에는 관련 당국의 엄격하다 못해 월권적 성격이 강한 제도운영이 놓여있다. 기자의 취재는 공정공시의 예외라는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취재기사라는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자가 취재목적으로 전화했다는 내용을 녹음한다거나 팩스 등을 통해 취재에 협조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야 비로소 공정공시의 예외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하루에 십여차례 이상의 통화를 하는 게 보통이다. 사적인 통화를 목적으로 기업에 전화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취재목적이라는 증거를 남겨야 하고, 공시 이전에 기사가 나갈 경우 경위서를 요구한다면 어느 기업이 취재에 자유로이 응할 수 있을까.
금융감독원이 배포한 공정공시 교육서 첫부분은 미국의 공정공시제도가 소개돼 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한 당국자마저도 사석에서 "취지는 좋은데,아직 미국에서도 시행과정상의 문제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아서..."라며 말을 흐렸다. 문제를 시정하는데도 미국 사례를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