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시간의 주인
시간은 유수와 같은 것인가. 시간의 강물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면서 2003이란 푯말을 지나온 지 벌써 십수일이 지났다. 생각컨데 그 흘러간 시간중에 온전히 내 시간은 얼마였던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데 나의 24시간을 진정 내가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기독교시대인 중세사회에서 시간의 주인은 신, 즉 하나님이었다. 우주만물이 신의 피조물이니 시간 또한 신에 의해 시작되었고 따라서 당연히 신의 소유였으며 인간이 신의 섭리하에 있으니 인간의 시간도 신이 관리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인간이 신에게 귀속되는 시간을 팔아 이득을 취하는 것, 즉 시간의 값으로 이자를 받는 행위는 불경한 것으로 인식되어 금지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자에 대한 금지는 기독교화 된 로마시대에 일반화되지 못했는데 `시간은 바로 돈'이라는 경험적 개념을 가진 상인들과 타협이 이뤄졌기 때문이라 한다. 허지만 기독교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이슬람교에서 지금도 이자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과 현재 모든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주일'이라는 이름의 일요일 휴무 등은 시간에 대한 신의 주도권이 남긴 흔적은 아닐까.
그런데 언제부터 시간이 본격적으로 세속적인 인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을까. 신성모독의 문제로까지 확대된 시간의 주도권 개념이 인간의 손으로 넘어오게 된 것은 아마 근대의 개창과 그 시기를 같이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경제뿐이겠는가. 세속적 인간이 신으로부터 시간 지배권을 회복한 것이야말로 근대의 인본적 세계관의 구축과 함께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것이니 본격적인 역사발전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 20세기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현실적 사회주의의 실험 시기이기도 하였는데 세기중 한 때 크게 성했던 사회주의가 결국 몰락한 것도 어떤 의미에선 시간의 주도권이 국가주도에서 개인주도에게 효용성과 정당성에서 그 자리를 빼앗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돈에 대한 이자만이 시간의 값은 아니다.
노동의 대가인 임금 또한 시간의 값에 다름아닐 터이다. 근로자들이 일을 하는 노동시간은 사용주에게 임대 또는 매매된 것이며 임금은 그 시간의 값이라는 개념인데 지금까지 계속되는 노동운동의 역사야말로 시간의 지배권과 값어치를 놓고 벌어진 논란과 대립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작금의 우리사회에서 주5일 근무제의 실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암중모색이며 대립 또한 이러한 주도권 다툼의 연장이라고 할 것이다. 고용이란 시간의 위임인가 매매인가, 위임이라면 그 주도권은 근로자에게 있는 것이며 매매라면 사용자에게 귀속된다고 볼 것인가. 중재자이기도 하고 룰의 집행인이기도 한 정부의 태도는 또 무엇인가. 궁금하고 또 아득하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시간은 내처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도 어찌된 일인지 모든 상황들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더욱 미묘해지고 있으며 경제상황 또한 내생, 외생의 많은 변수의 출현과 더불어 갈 길은 먼데 해는 저물어 가는 형국이다. 이 와중에서 개인의 일상이라고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다시 또 아득하기만 하다.
호랑이보다 무섭고 곶감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망각이다. 이 망각으로부터 기억을 되살려 시간이 신의 지배와 국가의 관리에서 인간 개개인의 소유로 돌아온 것을 돌이켜 생각해보는 것은 아득함으로부터 벗어나 신들메를 고쳐 매는 마라토너의 심정이니 이 새해 벽두에 시간타령을 읊조리는 한 곡절이기도 하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