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민영화의 전제조건
어윤대 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매각소위 위원장은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의미있는 말을 했다. 어 전 위원장은 대한생명 매각과 관련, 가격과 인수자인 한화의 도덕성이 부족해 매각소위 위원 등 반대가 많았음에도 정부가 이진설 위원의 사표를 전격 수리해 정원을 7명으로 줄인 후 정부측 위원이 주도해 위원 4명만의 찬성으로 매각안을 통과시키는 등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어 전 위원장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대한생명 민영화과정에서 제기된 금융계 일각의 의구심이 전혀 근거없는 게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그동안 금융권에서는 대한생명 매각이 정치적 차원에서 한화그룹에 낙점됐다는 설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는 이같은 민영화 과정에서의 잡음을 의식해서인지 공적자금 투입 은행들에 대한 구체적 민영화 방안을 새 정부 출범직후 만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해당 은행별로 매각의 목적 절차 시기 등을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논란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설명이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뒷말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정치, 관치의 논리가 개입된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동남 대동 경기 충청은행 등 외환위기 직후의 퇴출은행 선정 과정이 그랬고, 조흥 상업 한일 외환 등 조건부 생존 은행들과 이른바 우량 은행들을 구분하는 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국민은행과 장기신용은행,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합병에서도 정치, 관치의 논리는 위력을 발휘했다. 심지어 제일은행을 뉴브리지캐피탈에 매각할 때도 뒷말이 나왔고 최근의 대한생명이나 조흥은행 민영화 과정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25일 출범하는 `참여정부'는 이름만큼이나 투명성과 도덕성이 정권의 생명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루어지는 국영기업 민영화 과정에서도 투명성과 공정성이 우선돼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최근의 몇몇 모습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노무현 당선자가 지난달 금융노조 위원장을 만나 조흥은행 매각 문제를 협의한 대목이나 김종창 기업은행장이 나서 포철회장 유임을 반대하고 나선 게 단적인 예다.
당선자와 노조의 만남은 조흥은행 매각을 둘러싼 노사갈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하는 측면이 있지만 공자위 소관사항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포철지분을 2.6% 갖고 있는 기업은행 김종창 행장의 포철회장 연임 거부 발언에 대해서도 단순히 주주로서의 의사표시가 아니라 정치적 개입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김종창 행장 개인의 성품을 감안해도 그는 절대 스스로의 판단으로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며, 새 정부와 교감 아래 이같은 발언을 했을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분석이다.
외국인이 지분의 60% 이상을 갖고 있는 민영화된 기업에 대해서조차 개입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면서 금융사 민영화를 투명하게 하겠다고 말한다면 누가 믿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