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이라크와 아시아의 침묵
10여년만에 재현될 조짐을 보이는 이라크 전쟁은 아시아에 재앙이다. 많은 나라들이 대부분 석유를 중동에서 수입해 쓰는데다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높아 세계 경기가 냉각될 경우 어려움은 불보듯 뻔하다. 한국만 해도 벌써부터 치솟는 유가로 물가가 뛰고 무역적자가 확대되는 등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런 마당에 이라크 사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아시아를 대변할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은 유감이다. 안보리는 현재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5개 상임이사국과 기니, 멕시코, 카메룬, 시리아, 불가리아, 그리고 올해부터 2년 임기가 시작되는 앙골라, 칠레, 독일, 파키스탄, 스페인 10개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돼 있다.
통상 서남 '아시아'로 분류되는 시리아와 파키스탄이 있다지만, 세계 최대의 석유소비지역인 아시아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행히 최근 미국과 프랑스의 시각차로 치열한 외교전과 함께 전쟁이 지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랍권인 시리아는 '전쟁 반대'를 선언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덕을 톡톡히 봤던 파키스탄은 미국의 손을 들 분위기다. 중국은 전쟁 반대 입장을 취하고는 있지만, 미국과 관계를 감안, 정면 충돌을 피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더욱 유감인 건 아시아 국가들이 안보리에 포함됐다한들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다. 191개 유엔 회원국을 대변한다는 자부심보다는 '난감한' 상황에 속만 끓이지 않을까 싶다.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 국내외 반전(反戰) 여론의 화살을 맞아가며 전쟁에 지지표를 던질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전쟁 지지를 표명한 뒤 국내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출범 때마다 미국의 축복을 필요로 했던 한국 정부, 기대속에 출범한 새 정부가 임박한 전쟁에 어떤 목소리를 낼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