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 산은 부총재의 꺼진 휴대폰

[현장클릭] 산은 부총재의 꺼진 휴대폰

김양현 기자
2003.03.27 13:46

[현장클릭] 산은 부총재의 꺼진 휴대폰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언제부터인가 산업은행 박상배 부총재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흘러 나오는 소리입니다. 집으로 전화해도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대출해준 것과 관련, 지난 2월중순 감사원은 현대상선에 대한 대출이 동일인 신용공여한도를 초과함으로써 한은법을 위반했고 일시 당좌대월을 신규대출 방식으로 만기 연장해줘 산은 내부세칙을 위반했다며 재경부에 당시 여신담당 이사였던 박 부총재의 해임을 사실상 요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산은은 재경부에 박 부총재의 해임을 제청했고, 해임제청 이후 박 부총재는은행을 출근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경부의 해임 결정이 늦어지면서 산은은 한달 넘게 부총재 공백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박상배 부총재는 행원에서 출발해 30년을 넘게 근무하면서 산은맨으로서는 오를 수 있는 최고 자리까지 오른 사람입니다. 추진력 있고 빈틈없는 업무 스타일에다 선이 굵으면서도 멋스러움까지 겸비해 산은맨이라면 누구나 '제2의 박상배'가 되기를 원했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군대로 치면 만기제대를 목전에 두고 불명예 제대를 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처럼 되고자 밤낮없이 일했던산은맨들도 혹시나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박 부총재처럼 되지는 않을까 이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박 부총재에 대한 해임제청을 할수 밖에 없었던 정건용 총재의 심경도 착찹한것 같습니다. 징계사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정총재는 '대출서류 부실취급' 에 대해서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말을 끝내고 나서 뭔가 다른 말을 하려다 주섬주섬 집어넣고 마는 모습에서 총재의 고뇌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산은맨들은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외풍'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산은의 '태생적 한계'에 아파하고 안타까워 합니다. 때문에 대우자동차 처리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부하직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방패막이 구실을 해 줬던 박 부총재가 더 그리워지기도 할 거구요.

반세기동안 한국경제 발전의 첨병자리에 서 왔던 산업은행이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우뚝 서는 날은 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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