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럼스펠드의 "끗발"
"미군이 탱크를 몰고 지나가면 벡텔이 불도저를 이끌고 복구한다."
미 건설업계의 격언이랄 수 있는 이 공식이 이번에도 현실화됐다. 91년 걸프전 후 쿠웨이트 유정 복구사업권을 따냈던 미국의 벡텔사가 이라크 전후 복구공사의 주계약자로 선정된 것.
미 국무부는 17일(현지시간) `비공개 입찰'을 통해 벡텔에 최고 6억8000만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보이는 이라크 기간시설 사업권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이번 수주전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벡텔이 딕 체니 부통령의 전 재직사인 핼리버튼 등 미국의 5대 건설 그룹을 모두 물리쳤다는 점이다.
벡텔은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가 이사로 있는 기업이다. 슐츠는 국무장관 등용 직전까지 벡텔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았을 정도로 이 회사와의 인연이 남다르다.
벡텔과 부시 행정부의 최고 실세인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의 관계도 범상치 않다. 슐츠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럼스펠드 장관은 1980년대 벡텔이 추진했던 이라크와 요르단을 연결하는 원유 파이프라인 건설 계약 과정에서 핵심역할을 맡았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반대로 벡텔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지만 럼스펠드는 이건으로 후세인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이번 수주결과, 럼스펠드의 끗발이 체니보다 앞선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들의 이력을 보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럼스펠드는 포드 정권시절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던 중 최연소 국방장관으로 발탁됐다. 그는 후임에 체니를 추천했다. 럼스펠드가 체니의 정치적 대부인 셈이다. 핼리버튼도 섭섭치는 않다. 앞서 헬리버튼은 이라크 유전 복구 공사를 따냈었다.
이쯤되면 생각나는 단어가 있다. `정경유착'이다.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에게 정경유착의 온상인 재벌을 해체하라고 충고해왔다. 이제 미국은 더이상 정경유착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