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 가족기업은 운이 다했나?

[기고]한국 가족기업은 운이 다했나?

이성혁 미디어 에퀴터블 발행인
2003.05.01 09:44

[기고]한국 가족기업은 운이 다했나?

[편집자주] 아래는 미디어 에퀴터블을 발행하는 이성혁 사장이 본사에 기고한 글입니다.

일본 재벌과 한국 재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재벌의 원조는 일본에 있다.

1945년 종전 당시 미쓰이·미쓰비시·스미토모 등 3대 재벌은 일본 전체 기업의 자본금 23%를 점유할 만큼 일본 경제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러한 재벌은 종전 후 '일본 경제의 민주화'라는 기치 아래 맥아더 사령부에 의해 해체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대기업집단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들은 60년대 후반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다시 재결합하여 오늘날 후요·다이치강교·미와 등을 포함한 6대 기업집단으로 재탄생하였다.

이러한 일본 재벌과 한국 재벌의 차이점은 무얼까?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공동 저술한 '재벌'(비봉출판사)을 보면, 일본의 재벌과 한국의 재벌은 경제력 집중의 정도 측면에서 (최소한 지표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표 참조).

하지만 일본의 현재 기업집단에는 특정한 주인이 없는 데 비해 한국의 재벌은 일본의 전전 재벌과 마찬가지로 특정 가족이 오너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차이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또한 경영형태면에서도 한국의 재벌은 총수 및 그 일가가 소유뿐만 아니라 경영까지도 장악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공정거래위원장의 이러한 분석은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 재벌이 왜 개혁의 대상으로 인식되느냐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가족기업은 개혁의 대상?

특정한 가족이 오너로 자리잡고 있고 그 가족이 소유에만 머물지 않으며 경영에도 적극 참여하는 경우 이를 가족기업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재벌들은 대기업집단인 동시에 이러한 가족기업이기 때문에 개혁의 대상으로 선정된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재벌 개혁조치들은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 억제라기보다는 오너 일가의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해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 많다. 가령 지주회사의 도입 및 이사회 활성화를 위한 지배구조의 선진화, 엄격한 세무규정을 통한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부당승계 방지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에 따라 재벌의 오너 일가는 정부, 언론 및 시민단체의 집중적인 모니터링 대상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현대차그룹 정의선 부사장의 초고속 승진에 대해서 언론과 시민단체는 많은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 개혁조치들과 사회적 분위기가 기업보다는 가족에 맞춰지면서 '가족기업'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조성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과연 가족기업은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되는 존재인가? 이에 대해 쉽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시사주간지 '타임'의 유럽판 3월 24일자에 실린 유럽의 가족기업에 관한 기사를 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따르면 유럽 기업 중 85%가 가족기업으로 운영되고 있을 정도로 가족기업은 유럽 경제의 핵심주체가 되고 있으며, 가족기업은 단기 실적에 집착하지 않고 경기침체에 대한 대처능력이 일반 기업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고 한다.

가령 프랑스에서는 1991년부터 2001년까지 가족기업의 주가는 446% 상승한 반면 프랑스 상위 250개 대기업의 주가는 233% 상승하였다.

이는 단지 유럽에서만 통용되는 사실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S&P 500대 기업 중 40%가 가족의 지배를 받는 기업이며 미국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한 와튼 스쿨의 연구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가족기업이 일반 기업보다 주가상승률이 높았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만일 이러한 분석이 맞다면 특정한 가족이 오너로서 자리잡고 있는 한국의 가족기업은 단순히 개혁의 대상으로서 견제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잘 다듬어져서 한국 경제의 주역으로 키워져야 할 존재일 수 있다. 지금의 재벌 개혁조치에는 이러한 시각이 미흡한 듯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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