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어둠속의 가격자율화
생명보험의 보험료가 2000년 4월부터 완전 자유화됐다. 그 이전까진 정부가 보험료율을 정해줬지만 자유화조치 이후 보험사들은 사업비, 위험률, 예정이율 등 보험료를 산출하는 기준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됐다. 시장메커니즘에 따른 합리적인 보험료 산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보험료 자율화 조치는 소정의 목적을 거두지 못했다.
가격이 자율화되면 보험사간 경쟁으로 보험료가 내려가야 하지만 반대현상만 나타났다. 보험사들은 자유화조치 이후 사업비를 엄청나게 높게 책정해 3조원이 넘는 사업비차익을 남겼다. 경쟁을 하지 않고 담합을 통해 보험료를 올린 것이다.
이같은 부작용의 원인은 금융감독원의 직무유기에 있다.
보험료 경쟁이 제대로 되려면 고객들은 보험료 수준을 알아야 한다. 보험사간 보험료, 예정이율, 예정사업비율를 비교해 보고 취사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금감원은 이런 시스템엔 신경쓰지 않은채 가격 자율화조치만 시행했다고 하면서 뒤로 빠졌다.
보험소비자들이 아무런 정보없이 캄캄한 어둠속에서 보험에 가입하고 있으니 보험사들은 경쟁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이윤을 추구하는 주식회사의 속성상 보험료를 올리는게 당연하다.
이같은 보험사들의 비도덕성을 제재하는게 금감원의 역할이다. 보험료 현황을 고객들에게 알려주고 보험사간 담합을 깨고, 경쟁을 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금감원은 자유화란 명목을 내세워 더 중요한 사후 감독을 하지 않고 있다.
이제서야 금감원은 공시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나섰다. 예정사업비를 비율방식으로 공개하고 보험사간 보험료를 비교할 수 있도록 비교공시도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보완책이 실효성을 갖을 것이라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비교공시의 주체를 보험사들이 갹출해 운영하고 있는 생보협회에 넘겼기 때문이다. 생보사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공시제도가 변질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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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가 3000개가 넘는 미국도 보험감독국이 직접 비교공시를 하고 있다. 금감원에 22개 생보사의 보험료 비교공시를 하라는 요구는 무리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