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파리목숨'비정규직 은행임원

[현장클릭]'파리목숨'비정규직 은행임원

김진형 기자
2003.07.29 17:12

[현장클릭]'파리목숨'비정규직 은행임원

최근 은행권을 비롯해 사회적으로 비정규직 처우 개선 문제가 핫이슈로 부각되고 있지만 이 논의에서 제외돼 있는 비정규직이 있습니다. 바로 은행 임원들입니다. 오히려 이들은 은행 노조와 비정규직 처우개선 협상에 은행 경영진 대표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비정규직'이 나서서 노조의 비정규직 처우개선 요구에 맞서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최근 들어 은행권에는 이 비정규직 임원들 중 소위 '옷 벗는' 사람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인사철도 아닌데 말입니다. 특히 올해 은행들이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면서 이 같은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영업성적에 따라 평가받는 '계약직' 임원들의 불안정한 고용 현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달 한미은행 서경표 원효성 부행장이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못했고) 이달 들어서는 국민은행 김복완 최범수 서재인 부행장이 임기중 사표를 냈습니다. 또 바로 엇그제(28일)에는 기업은행의 윤남열 전무가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한미은행 서경표 부행장과 원효성 부행장은 하영구 행장과 함께 '젊은 한미은행'을 대표하는 경영진이었지만 결국 재계약에 실패했고, 국민은행 부행장 3인은 김정태 행장과 코드가 맞지 않아 자리를 내놨습니다. 기업은행 윤 전무는 은행장과 정부측의 용퇴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신한금융지주회사에 인수돼 이미 홍석주 행장이 사퇴한 조흥은행의 임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기다 최근 금융감독 당국의 은행계 카드에 대한 검사결과가 나오면 짤리는 임원들이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뒤숭숭한 분위기입니다.

사실 은행 임원 자리가 외부에서 보기에는 대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정말 불안하기 짝이 없는 자리입니다. 1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사실상 '계약직' 전문인력과 마찬가지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억원의 연봉에, 경우에 따라서는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까지 받지만 이것도 은행에 남아 있을 때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 때문에 은행 임원들은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 나가라면 나가는 거지"라는 푸념섞인 말을 자주 하기도 합니다.

은행 임원들은 자신이 맡은 사업부의 영업성적에 따라 자리보전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종종 무리한 정책을 펴기도 합니다. 실제로 한 은행의 신용카드 담당 임원은 지난해 중반부터 카드 영업을 축소하라는 최고경영자의 지시를 무시하고 확장정책을 펼치다가 올해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은행은 그 확장정책의 여파로 지금까지 부실부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사업부제의 폐단이라며 사업부제의 폐지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임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경영을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부제는 폐지 보다는 개선의 대상일 겁니다.

어쨌든 은행 임원은 '파리 목숨'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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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 금융부장

안녕하세요. 금융부 김진형 금융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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