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배 아픈 것, 배 고픈 것

[광화문]배 아픈 것, 배 고픈 것

박종면 부국장겸 금융부장
2003.11.03 07:11

[광화문]배 아픈 것, 배 고픈 것

 부동산대책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주택거래 신고제 연내 시행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주택시장 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했던 재경부는 31일에는 강남지역 고가 아파트의 재산세를 지금 보다 3~5배 까지 높이는 부동산 보유세 개편안까지 내 놓았다.

 이 과정에서 김진표 부총리는 30일 조찬강연을 마치고 걸어 나오면서 종합대책에 대한 내부평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종합대책 보다 더 강력한 것은 사회주적인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부총리의 관이 의심스럽다”는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심지어 현직 금통위원에게선 ‘똑똑한 대통령에 모자라는 관료’라는 핀잔까지 들어야 했다.

 대통령과 부총리, 경제관료는 물론 금통위원, 언론과 네티즌들까지 나서 연일 부동산 대책을 고민하고 토론하고 있으니 그래도 강남 집 값이 잡히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강남 집 값을 떨어트리는 데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두 한 마디씩 하고, 문제해결에 골몰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것 못지 않게 심각한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9월말 기준 금융사들로부터 30만원 이상의 돈을 빌려 3개월 이상 갚지 않아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사람만 350만명을 넘었다. 이는 경제활동인구 6~7명 가운데 한 사람은 신용불량자라는 의미며, 4인가족 기준으로 네 집 걸러 한 집에 신용불량자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최근에는 여성 신용불량자 증가 속도가 남성 신용불량자 증가를 앞질렀는데,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신용불량자 남편이 아내 명의로 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다가 아내까지 신용불량자가 되고 마는 ‘신용불량 가족’이 탄생하는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신용불량자에서 ‘신용불량 가족’으로 돼 버리면 이는 곧 가족의 해체로 이어진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신용불량자 문제는 개인의 나태함이나 게으름만이 아니라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소비를 부추키기 위해 정부당국과 금융사들이 초래한 구조적 문제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신용불량자 대책은 이른바 ‘모럴해저드(도적적 해이)’ 한마디면 끝난다. 금융거래가 제약받고 취직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실직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신용불량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배짱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르겠지만 정부도 언론도 네티즌도 이 대목에선 크게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최근 캠코(자산관리공사)가 신용불량자들에 대해 원리금의 70%까지 탕감해주겠다고 했다가 여론으로부터 ‘모럴해저드’를 불러 신용사회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호된 질책을 받고 원리금 감면 폭을 크게 줄인 사실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사회의 신용불량자 대책이 ‘모럴해저드’와 ‘온정주의에 대한 경계’로 일관하다 보니 신용불량자 제도의 남용과 위헌 가능성, 신용불량자 등록제도의 폐지, 개인 채무자 회생법안의 마련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다. 정치권 일각에선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한 정부 개입과 재정지원 등을 주장하지만 재경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전직 재경부 관료가 우스개 소리처럼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고픈 것은 잘 참는데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하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정책을 펼 때도 부동산 문제, 특히 강남 집값 폭등과 같은 ‘배아픈 것’과 신용불량자 문제 같은 ‘배 고픈 것’은 잘 구분해 다뤄야 여론의 질타를 받지 않는다”고.

 하루가 다르게 강도를 높여 가는 강남 부동산 대책과 하루가 다르게 숫자가 늘어나도 ‘모럴 해저드’ 한 마디로 일관하는 신용불량자 대책을 보면서 전직 재경부 관료의 말이 어쩌면 맞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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