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전략]버려야 얻는다
‘수급에 의해 상승한 장(場)은 수급에 의해 무너진다’는 증시 격언이 그대로 맞아떨어진 하루였다. 외국인이 선물과 현물을 동시에 순매도해 종합주가지수가 15포인트나 떨어지며 830대로 주저앉았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국민은행등 우량대형주들이 외국인 매물과 프로그램 차익매물로 급락해 지수를 끌어내렸다.
오양수산동원산업등 수산주와동신제약등 일부 제약주가 가격제한폭까지 오르며 틈새시장을 형성했지만 증시는 때맞춰 불어 닥친 ‘입춘 꽃샘추위’에 하루 종일 떨었다.
시지프스의 멍에를 벗지 못하는 천수답 증시
한국 증시는 여전히 시지프스의 멍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위덩어리를 어렵게 언덕 위로 밀어 올리면 아주 쉽게 밑바닥으로 흘러내리지만, 계속 밀어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 시지프스처럼 한국 증시는 어렵게 종합주가지수 900~1000선까지 오르면 한순간에 800선 아래로 미끄러져 내린다.
한번 오르내릴 때마다 수없이 많은 ‘개미(소액 개인 투자자)’들은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피땀 모아 모은 종자돈을 하늘에 날려 버리고 만다.
이는 한국 증시를 튼튼하게 떠받치는 ‘저수지’가 없는 탓이다. 가뭄이 계속되면 모내기조차 못하고 어렵사리 모내기를 하더라도 벼가 말라죽는 천수답처럼, 한국증시는 외국인이 주식을 사지 않으면 이내 고꾸라지고 만다.
종합주가지수가 작년 5월 510선에서 지난 1월 870선까지 올랐던 것도 외국인이 약20조원 어치를 샀기 때문이다. 이날 주가가 예상외로 급락한 것도 외국인이 1400억원 가량 순매도한 충격 탓이었다.
희망을 버려야 수익을 얻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가 예측과 증시 분석이 힘들어진다. 주가가 얼마나 떨어질지는 외국인이 얼마나 팔지를 물어봐야 하고, 증시가 언제 회복될 것인가는 외국인이 매도를 멈추고 언제 다시 살 것인지에 달려 있다.
하지만 외국인의 매매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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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증권 임송학 이사는 “외국인의 적극적인 매수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당분간 매도우위를 나타낼 것으로 보여 2월중에 종합주가지수 800선이 무너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홍콩의 중국주식지수가 올들어 20% 떨어졌고 신흥시장의 선도주 격이었던 브라질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선데다 미국 나스닥지수도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며 “2월에는 미국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1월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여 외국인의 주식매수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P&A투자신탁운용 강신우 전무도 “원-달러환율이 하락(원화가치 상승)하면 외국인의 환차익이 줄어들고 한국 수출기업의 수출이 어려워진다”며 “중국 모멘텀이 약화됨에 따라 외국인 매수세는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현대증권 정태욱 상무는 “한국의 정보기술(IT) 산업 경쟁력이 높고 원/달러 환율 하락도 크지 않을 것”이라며 “외국인의 급격한 주식매도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동원증권 강석모 투자분석부장도 “한국 경제의 기본여건에 변화가 없는 만큼 지수 하락은 820선에서 멈출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주가는 오르지 못하면 떨어지게 마련이다. 외국인이 공격적으로 순매수할 때 상승폭 보다 훨씬 약한 매도에 하락폭이 커 투자심리가 불안해지고 있다.
한동안 잠복해 있던 LG카드와 삼성카드 등의 카드 채 문제, 경기침체 속의 물가상승, 미국 및 한국의 금리인상 가능성 등…. 호재는 찾기 어려운데 악재만 자꾸 커 보이는 상황은 전형적인 약세국면이다.
살아남은 사람이 강자다
얼음장 속에서도 시냇물은 흐르는 게 자연의 섭리다. 시세판이 새파랗게 멍드는 속에서도 상한가를 기록하는 종목도 있고, 더 큰 수익을 내기 위해 준비하는 종목도 있게 마련이다.
이날 외국인 매수가 몰린대덕전자삼성화재신한지주한국전력레인콤등이 그런 종목에 속한다. 조류독감이란 태풍 속에서 불안한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는 수산주와 제약주 등도 당분간은 상승세를 이어갈 태세다.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태조 왕건’이란 TV 드라마에서 왕룽(왕건의 아버지)이 왕건에게 “버려야 얻는다. 송도를 궁예에게 바치고 후일을 도모하라”고 유언하는 대목이 있었다. 당장 눈에 아른거리는 조그만 이익에 사로잡혀서는 뒷날 큰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 준 말이다.
지난해 유행했던 영화 ‘황산벌’에서 김유신도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사람이 강자”라고 했다. 외국인이 주식을 파는 국면에서는 어설프게 틈새시장을 겨냥하다 홍수에 휩쓸려 익사할 위험도 적지 않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정월 대보름날에 ‘눈맑이-귀밝이 부럼’을 깨먹으며 기다리는 인내를 배워야 할 때다.
주가가 떨어진다는 것은 좋은 주식을 싼 값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것이다. 섣불리 달려들어 장렬히 전사하기 보다 쩨쩨하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살아남는데 힘써야 한다.
그동안 내재가치에 비해 주가가 싼 종목으로 평가받고 있는동양고속건설스타코삼호LG가스삼성출판같은 종목을 발굴하고 싸게 사두는 사람이 훗날 주가가 오를 때 강자로서 어깨를 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