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달러환상
빠르게 잊혀 지고 있는 용어 중에 화폐 환상(Money Illusion)이라는 것이 있다. 보상체계가 실질 기준인가, 명목 기준인가에 따라 경제주체의 선택이 영향 받는 현상을 가리킨다. 화폐 환상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개념적 도구인지는 의문이지만 보편적인 화폐 환상은 아니더라도 특정한 화폐, 예컨대 미 달러화에 대한 환상은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
필자는 달러화를 그 가치 이상으로 평가하는 심리적 경향을 달러 환상으로 부르고자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달러화는 여러 가지로 매우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는 개도국 중앙은행 들이 달러화로 지불준비금을 보유하려 한다거나, 주요 원자재 시세가 달러화로 표시된다는 점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시 달러"라는 식의 인식이 많은 경제주체의 심리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각종 경제 데이터의 해석 및 환율 전망에 심리적 편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록적인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달러화가 강해질 것이라는 "과학적" 전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미국의 높은 생산성에 힘입어 달러 강세가 유지될 것이라는 스마트한 예측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과연 달러화는 그렇게 특별한 대접을 받을 만한 근거를 갖고 있는가? 대답은 "예" 그리고 동시에 "아니오"이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미국이 갖는 최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감안한다면 달러화는 충분히 특별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정학적 문제를 벗어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다소 과격하게 표현한다면 "강한 달러가 미국 이익에 부합한다"는 미 당국의 되풀이되는 수사법 외에는 달러화 가치를 보장할 만한 수단이 없다. 물론 다른 통화도 상황은 마찬가지 아닌가 라는 반론은 옳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더욱 주요 통화간 환율은 경제적 펀더멘털을 반영해서 움직일 필요가 있다. 올 하반기나 내년 정도만 보더라도 경제주체 들이 달러 환상에서 벗어난다면, 달러화가 약세국면에서 벗어날 확률은 상당히 낮다. 무엇보다 미국과 일본, 미국과 유럽간 성장률 격차가 좁혀질 전망이다.
특히 5년 만에 처음으로 소비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장기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는 일본에 주목한다. 일본 내수에 불이 지펴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성장률이 3-4% 수준으로 급락하지만 않는다면 엔화 및 아시아 통화가 미 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보일 이유는 없다.
그 동안 경상수지 흑자를 이용해 미 국채를 구매함으로써 달러화의 추가적인 약세를 막아 온 일본 및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시장 개입 인센티브가 약화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한국을 포함, 많은 동아시아 중앙은행의 달러보유고가 적정수준을 크게 넘은 데다 일본 및 아시아 경제의 모습이 작년보다 훨씬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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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동아시아 국가의 이른바 달러 리싸이클링에 힘입어 2003년에 전세계 자본수입(Capital Import)의 3/4를 독식함으로써 기록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메꿀 수 있었다. 일본과 동아시아 국가들이 달러화를 이미 "많이 먹은" 상황에서도 미국의 자본수입이 계속 쉬울 것이라는 전망은 분명 환상이다. 임박한 미국의 통화정책 기조 전환에 따른 효과에 있어서도 달러 환상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의 금리인상이 달러 강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리인상이 달러 강세로 이어질 것이라는 근거는 매우 불안정 하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확산, 그리고 미국과 주요 선진국간 실질성장률 갭의 축소 전망은 향후 예상되는 금리인상이 자동적으로 달러강세로 이어지기 힘들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이 대 달러화 고정환율제를 포기함으로써 위안화가 달러화 블록에서 이탈하게 된다면 이는 달러화의 고평가 경향을 상당히 제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달러 환상이 존재하는 한 적정 수준 이상으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가능성은 항상 있지만, 그 귀결은 결국 예기치 못한 달러화 가치 하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