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카드' 다 내보인 정부
정부가 연일 딱 부러지게 해야 할 것과 두리뭉실 넘어가야 할 것의 선택에서 패착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주 김선일씨 피살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이렇다할 협상 한번 해보지 못 하면서 '파병원칙은 불변'이라며 전례없이 명확한 입장을 취했다. 일단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난 뒤 명확성을 드러내도 늦지 않았을 거라며 많은 사람이 정부의 섣부름을 탓하고 있다. 정부는 AP를 비난하면서도 명확성으로 또다른 설화를 자초했다.
중소기업과 건설경기 연착륙 대책이 임박했다. 정부는 또다시 명확성을 택했다. 뚜껑이 열리기 전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은 28일 "경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데 공감하지만 과거 정부가 펼쳤던 단기부양책은 펼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어 "참여정부가 과거 정부와 다른 것은 장기발전을 중시하는 '장기주의'"라며 차별화에도 여전한 의욕을 보였다. 이헌재 부총리도 "과거처럼 주택건설을 경기정책의 수단으로 삼지 않을 것이며 경기가 급랭한다고 해서 양도세 인하 등 부양정책도 취하지 않겠다"고 못박고 있다. '경기(景氣)'라는 게임의 달인에 정부는 친절하게 자신의 패까지 내보이며 관대함을 바라는 격이다.
중소기업과 건설경기대책이 붙어다닌 것은 모두 고용상황 및 내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20대 실업자는 전체 실업자의 절반에 달하며 신용불량자 400만 시대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내수는 갈 곳 없는 추락세다.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 동향에서 3개월째 증가세를 기록했던 도매업도 감소세로 돌아섰고 건설수주는 14개월만에 가장 크게 추락했다.
명확성만 고집하는 정부의 카드는 이미 노출됐다. 예측가능성에 얽매여 스스로를 옥죄는 것보다 퇴로를 열어둘 필요도 있다. 섣부른 단도직입적 선택은 운신의 폭을 좁힌다. 후퇴 의지와 퇴각은 다르다. 경제관료의 전범으로 통하는 그린스펀 FRB의장의 말과 힘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데이터를 수집ㆍ분석ㆍ전망하면서도 모호함을 유지하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