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위험기피증후군
한편에서는 얼어붙은 내수경기를 살리기 위해 각종 대책이 강구되고 있지만 자금흐름을 차단시키는 가치파괴적 정책기조로 인해 경제시스템의 이상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우리경제는 그동안 경험했던 위기피로증후군이 아니라 보다 심각한 위험기피증후군에 빠져들고 있다.
모든 경제주체들의 위험에 대한 극단적 기피는 위험 차별화를 근간으로 하는 시장의 기본 작동마저 마비시켜 놓고 있다. 버블형성기의 위험에 대한 둔감현상은 체제적 도덕적 해이를 통해 이제 버블붕괴의 마무리 단계인 위험기피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행정수도 이전이나 외교노선상의 혼란, 현실과 동떨어진 파업사태 등 산적한 과제들은 해결주체로서 피상적인 정치과정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미 정치권은 책임소재가 모호해진 각종 이슈들로 과포화상태이고 실제 조율기능을 담당하는 시장기능은 저하된지 오래이다. 현 우리경제의 집단적 위험기피증후군은 집단행동과 정책혼선으로 야기된 내재적 성격이 짙다.
예로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부동산 경기의 냉각과 자산가격의 하락 위험은 부채상환능력이 소진된 가계부문이나 중소기업의 부실화를 전 금융권으로 확대시키게 된다. 물론 그 피해는 우리가 살리고자 하는 서민경제에 고스란히 돌아간다.
어찌보면 위기이후 글로벌기준에 맞게 시스템을 고쳐오는 작업에 열중했으나 정작 우리경제를 떠 받치고 있는 산업기반의 육성에는 소홀히 해왔다. 몇몇 IT관련 업종에 의존해 수출호전에 기대다 보니 정작 중요한 위험이 간과되어온 것이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구조적 문제점을 소홀히 한 대가를 본격적으로 치러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놓여있다.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소진된 데다 정책대응마저 산업양극화나 취약부문에 연계된 금융부문의 부실화 가능성으로 인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첫째, 부동산 담보대출의 만기가 도래함에 따라 금융기관들의 잠재적 위험에 대한 선별적 사전관리가 강조되어야 한다. 기초적인 소득흐름에 대한 분석없이 담보를 기초로 대출한 부분은 사후적이라도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분류?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위험파악이 가능하고 적절한 사전 충당금 적립이 가능하며 금융권의 건전성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둘째, 외화자산관련 이상 징후에 대비해야 한다. 국제채권시장이 금리기조의 변화가능성으로 요동을 치고 있는 가운데 안전자산에 대한 평가마저 재고되어야하는 상황이다. 우리자체의 불확실성과 위험요인은 현재 외화자산 수요증가로 나타나고 있으나 운용여력이 극히 제한된 우리기관의 입장에서 위험 요인이 집중되고 분산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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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금융기관 건전성제고를 위한 세계적 기준적용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 선진국의 기준적용이 예상밖의 부작용을 초래하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기반이 완전히 양극화되어 내수 경기회복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우리의 여건상 금융부문의 적극적 역할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바젤II같은 기준이 적용될 경우 우리 금융부문은 취약부문을 실질적으로 더욱 어렵게 하기 쉽다. 물론 그 공백은 재정부담으로 귀속되기 마련이다.
넷째, 우리 경제규모가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없이 자생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기업친화적 환경확보가 시급하다. 이는 경기부침과 구조적 갈등이 심한 개도국 경제에서 쉽게 이루기 어려운 과제이지만 수익창출의 주체가 움츠러들 경우 고용과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불안한 시장을 안정시키는 비용이 재정부담으로 귀착될 경우 정작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려는 기업가정신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기업활동은 기업가에게 맡기고 사회안전망 구축과 병행하여 시장경쟁을 통한 공정경쟁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분명 위험기피증후군은 전반적인 불확실성이 가중된 데 대한 시장의 냉철한 반응이다. 이러한 원인을 제공한 다양한 원인에 대해 보다 근본적 차원의 접근이 없는 한 시장신뢰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커져버린 경제규모를 뒷받침할 만한 운용체제상의 낙후성을 극복하려면 인적자원의 재배치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증상차단적인 단편적 정책처방은 극단적 위험기피를 통해 경제체제의 작동을 마비시킨다. 마비의 댓가는 서민경제의 붕괴이다. 따라서 향후 모든 정책선택은 선택의 기회를 늘리고 성장과 고용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맞추어져야 한다. 축소지향적 균형추구나 과거 잣대에 집착한 사후검시적(post-mortem) 경제체제의 보정은 결코 진정한 개혁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