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박정희의 살아있는 언어

죽은 박정희의 살아있는 언어

이백규 기자
2004.07.14 17:27

죽은 박정희의 살아있는 언어

박정희 박근혜 부녀가 대를 이어 수난을 당하고 있다.

고박정희 대통령은 친일 혐의로, 박근혜 전한나라당 대표는 행정수도와 관련해 언론과 야합한 혐의로 각각 공격받고 있다. 박정희대통령은 묘지에서 나와 재판을 받아야 할 판이고 그 딸은 졸지에 인터넷상 성희롱 대상이 됐다.

누가 누구를 왜 공격하고 이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의견을 달리 할 수도 있겠지만 한 관점을 소개한다.

요즘 우연히도 박정희 대통령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어제 낮 경북 안동 하회마을. 한차례 소나기가 쏟아진후 산자락에 걸친 하얀 뭉게구름은 에머럴빛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그 순백미를 더하고 있었다.

풍산류씨의 집성촌인 하회의 정가운데 그 가문 큰 어른인 서애 유성룡의 종택이 자리하고 있고 그 종택은 서애의 박물관으로도 활용되고 있었다.

솟을 대문의 편액(처가밑에 단 현판)은 영모각. 박물관 안에 들어가니 박정희 대통령이 1977년 이곳을 방문, '서애를 영원히 흠모한다'는 의미의 '영모각' 친필을 남겼고 그 글은 잘 보존되어 있었다.

붓글씨를 좋아하던 박통(호불의 감정이 뒤섞였기에 필자도 이말이 정서적으로 더 가깝다) 특유의 힘찬 검은 먹 글씨가 허연 굉지를 가로지르며 곽 채웠다. 서애는 임진왜란때 영의정으로 위기극복에 앞장서고 전후 민심수습에도 큰 공을 세운 충신으로 임란 회고록인 징비록(국보 132호)은 '유비무환'의 귀감이 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애와 무슨 직접적 인연이 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 경향 각지를 다니다 유심히 살펴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퇴계이황의 도산서원을 가기위해 안동 시내에서 북동쪽 외곽으로 빠지는 길목에 한글로 퇴계로 표지석이 있다. 역시 박통의 패기넘치는 일필휘지의 붓글씨로 한글 애호가인 그를 배려한 흔적이 보인다.

지난달말 진주 출장에서 들른 정암바위는 부자들의 바위 전설로 유명했는데 이와함께 임진란때 의병장 곽재우의 전승지로도 유명했다. 그곳 안내문에는 방치됐던 누각과 유적지가 60년대말 박통 방문이후 문화재로 지정, 보존 전수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 있었다.

여의도 전경련 현관 계단 앞 정면에는 집채 만한 바위가 누운채 느긋하고 편안하게 객을 맡는다. 앞면엔 박통의 친필 '창조 협동 번영'이 새겨져있고 뒷면엔 노상 이은상의 글이 새겨져 있다. "조국 근대화를 위하여 창조 협동 번영의 기백으로 (전경련 창립이래)무에서 유를 이룩하여 마침내 세계의 한국이 되게 하였다". 전경련 창립을 기념해 1979년 쓰여졌다.

이밖에도 경부고속도로가 시작되는 서울신사동의 표지석 '제1번 고속국도'와 경북포항의 포스코, 경남울산의 현대차, 현대미포조선..등 한국경제사의 획을 긋는 일이 이뤄진 곳엔 항상 박통이 가 있었다.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고향 이야기를 소개하는 '경제기행'의 안동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제 저녁 코란도 승용차 안에서 밤9시 뉴스를 들었다. 열린우리당과 민노동이 공조, 박통도 일제시대 행위와 관련한 조사를 받게한다는 특별법을 제출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으로 조사 대상을 일본군 소위 이상으로 확대, 중위였던 박통이 대상이 됐다. 원래는 대상이 아닌 걸 이번에 법개정을 통해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박통이 일본군 육군 장교로 만주에서 근무했다는 것은, 다행히 독립군과 전투는 없었고 중국군과 교전이 있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기자도 20여년전 학창시절부터 알았지만 일본군 장교 근무가 그의 치적을 가리지는 않았다.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독재와 반민주가 더 문제라는 생각이었다.

한걸음 더나가 일부 만화가들이 광복절인 8월15일 발매를 목표로 '만화 박정희'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촛점은 대통령 이후보다 일제 육군 장교 박정희라고 한다. 작가는 라디오에 나와 "친일파 박정희 중위는 해방 이후 친일세력의 정점을 형성했다"고 말한다.

물론 진상은 밝혀져야 하고 역사적 사실은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다. 공개처형하듯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은 오히려 더 심각한 왜곡을 낳을 수있다.

만화는 TV코미디나 드라마 만큼 감성을 자극하는 미디어다. 박통의 친일여부가 어떻게 TV 오락 쇼 같은 오락물이 될 수 있나. 더구나 어린 학생들이 그 만화책을 진실로 믿는다면... 감수성이 예민한 내 아들 딸들이 그걸 본다면....

학자를 비롯한 전문가 영역의 연구 고찰을 먼저 거쳐야 한다. 그리고 나서 진실이 밝혀진 다음, 선전선동 소재로 써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다. 학술지에 실린 연후에 국회에서 논의하고 만화로 다뤄져야 한다.

청와대 홈피에서 박통의 딸인 전 야당대표를 성적 패러디로 활용했다는 뉴스는 구역질나는 일이어서 더 이상 떠올리기조차 싫다. 청와대 홈피 열린마당을 장식하고 있는 그 이후의 "김일성 보다 더 악독한 박정희""표현의 자유는 무제한 허용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는 주장들엔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10년전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기자로서 연수할 때 사회주의 이념서클 '볼쉐비키 텐더시(경향파)' 주최 심포지엄에서 한 자칭 공산주의의자가 "박정희는 정치적 독재자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한국의 영웅"이라고 발표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그런 박통을 역사의 심판대에 올리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한국의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지 의아해하는 것은 정상인이라면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는가.

(그는 토론대 대학원생으로 한국의 민주화가 진행돼 YS문민정부가 들어섰지만 한진중공업 선상 파업사태에서 나타나듯 노동자 탄압, 노동운동 억압은 지속되고 있으니 전세계 공산주의자들이 연대해 한국 노조를 지원하자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서양의 공산주의조차 인정하고 칭송하던 영웅 박정희를 역사의 죄인으로 몰아 세우려는 일부 국내 세력들.

그들에게 국토의 경향 각지를 돌면서 곳곳에 서려있는 박통의 흔적을 만져보고 느껴보고 그가 발신하는 파장에 몸과 마음을 맡겨본 연후에도 뜻이 변하지 않으면 그때 그뜻에 따라 행동에 나설 것을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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