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지도(map)'와 '지도(leadership)'

[기자수첩]'지도(map)'와 '지도(leadership)'

박재범 기자
2005.01.05 08:12

[기자수첩]'지도(map)'와 '지도(leadership)'

김대중 정부말기인 지난 2002년 2월 발렌타인 데이. 재정경제부 기자실이 북적거렸다. 대한민국이 10년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총망라된 '2011 비전과 과제'라는 보고서 때문이었다.

재경부 주도 아래 16개분야의 경제전문가 290여명과 정부 각 부처 공무원이 10개월에 걸쳐 공동으로 작성한 대규모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었기에 관심은 더 했다.

담긴 내용도 △고교 평준화 폐지 △재벌 규제 근원적 전환 △인구억제중심의 수도권 정책 포기 △경자유전 원칙 폐기 △영어 공용어화 적극 추진 등 매우 센세이션했다.

그러나 '비전 2011'은 그뒤 조용히 사라졌고 이제는 공무원들의 책상에서조차 발견하기 쉽지 않은 희귀한 '고전'이 됐다. YS때를 의식한 기자들이 '임기말 내놓는 장기 정책보고서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지적했을 때 '이번만은 다르다'고 항변했던 이들이 정부 요직에 자리잡고 있지만 그 때의 기억은 잊은 듯 하다.

3년이 지난 을유년 벽두. 노무현 대통령은 "선진한국으로 가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지도를 정리하자"고 했다. "선진국 목전에 다다랐으니 야심찬 자세로 국정을 운영하자"고도 했다.

하지만 그 설명을 듣다보면 2002년의 '비전 2011'과 겹친다. '비전2011'은 "유연한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지식기반경제에 걸맞는 새로운 성장기반을 구축해 동북아 경제권의 중심으로 도약하자"고 쓰고 있다.

또 우리경제의 미래상을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시장경제 △지식과 기술이 견인하는 성장경제 △경제발전과 삶의 질을 아우르는 복지사회 △동북아 경제권 형성을 선도하는 거점국가 지향 등 4가지로 제시했다.

"우리가 선진국을 목표로 했지만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게 노 대통령의 인식이지만 2002년에도 먼 얘기는 아니었고 2만달러 시대를 부르짖던 것도 엊그제다.

장기 비전은 이미 수없이 만들어졌고 선진 한국으로 가는 길도 적잖이 제시돼 새로운 게 없을 정도다.

물론 '전략지도'나 '선진한국 청사진'은 필요하다. 다만 우리의 정체(停滯)는 '지도(map)'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지도(leadership)'의 부재 때문이라는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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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 편집국장

박재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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