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두 번 다시 패배는 없다"

[머투초대석]"두 번 다시 패배는 없다"

문성일 기자
2005.04.06 10:29

[머투초대석]"두 번 다시 패배는 없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삘릴리리, 삘릴리리..."

지난 3월29일 새벽 4시. 현대건설 이지송 사장의 집 전화와 휴대폰이 동시에 울린다. 평소와 같이 밤 12시30분에 퇴근, 새벽 1시 잠자리에 든지 3시간 만이다.

꼭두새벽의 전화가 이제는 익숙해질만도 한데 이날 전화는 왠지 불안했다. 이 사장은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들었다. 인도네시아 현장이었다. 예감이 그대로 적중한 것일까.

"사장님. 공사 현장 위가 지진때문에 흔들렸습니다. 내부 점검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지진이 멈추고 내부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절대 들어가면 안된다."

수마트라섬내 메단시와 150㎞ 떨어진 레눈(Renun) 수력발전소 현장 소장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 사장은 간결하면서도 단호하게 지시를 내렸다. 이날 새벽 수마트라섬 연안 인도양에서 리히터 규모 8.7의 강진이 발생, 그 여파로 올 12월 완공을 앞둔 지하 100m 아래의 터널 현장의 지상 윗부분이 심하게 흔들렸던 것이다.

현장 소장의 전화에 순간 "1억4000만달러가 날라가는구나"하는 생각도 스쳤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더 급했다.

일단 지시를 내린 이 사장은 그 길로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는 벌써 관련 임직원들이 나와 있었다. 오전 9시30분 "이상없다"는 최종 현장 보고를 받은 후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아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 박수가 저절로 나왔다.

벌써 2년째다. 한밤중에 퇴근해 새벽 출근을 한 지 말이다. 지난 2003년 3월 환갑을 훌쩍 넘어선 나이에 되돌아왔지만, 쓰러져가는 '현대건설호'를 살려야 한다는 신념만은 누구 못지 않았다. 아니 더 절실했다.

취임 일성으로 '수주 극대화를 통한 현대건설의 명예회복'을 강조했지만, 속내는 "현재의 어려운 현실을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더했다. 그만큼 불멸의 건설신화를 쌓아왔던 회사는 곳곳에 패배주의로 얼룩져 있었다.

지난 2년간 국내·외 현장과 발주처 등을 발로 뛰며 현대건설을 정상화의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듣고 있지만, 그는 이제 반환점을 돌았을 뿐 갈 길이 멀다고 강조한다.

취임 후 2년간의 성적표에 대한 자신의 평가와 앞으로의 구상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2년을 회고하신다면.

▲한 마디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과거의 명예를 되찾겠다고는 했지만, 솔직히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임직원들의 떨어진 사기를 되살리는 것도 필요했습니다. 다행히도 망가진 조직이었지만 '현대'의 기운과 뜨거움은 남아있었습니다. 더이상 격식이나 형식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살기위한 노력을 해 온 것 뿐이고 앞으로도 떳떳하게 살아남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자 바램입니다.

-기업인으로서 현대건설을 평가하신다면.

▲기업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좋은 기업을 만드는 것은 기업인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합니다. 현대건설을 바르고 투명한 기업으로 만드는 것 또한 저의 임무이자 임직원들이 해야 할 일 입니다. 한때 국민과 국가의 힘에 기대었지만, 앞으로는 (현대건설이)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할 것입니다. 현대건설은 과거의 해묵은 때를 벗고 새롭게 거듭나고 있습니다.

-취임 이후 회사의 수주와 매출이 급신장을 했는데요. 원인은 무엇입니까.

▲'건설산업은 수주가 생명'이라는 것은 평소 가지고 있는 소신입니다. 따라서 임직원들에게 살기 위해서는 일감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며 영업을 강조했습니다. 본인도 발주처 등을 발로 뛰며 수주에 전력했습니다. 임직원들도 빠르게 융화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첫 결실은 취임 2개월이 조금 넘은 지난 2003년 6월 초에 나타났습니다. 사흘에 걸쳐 신고리 원전1·2호기 공사, 광양항 컨테이너 터미널공사, 청계천복원공사 등 무려 1조원 가량의 공공공사를 수주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이는 결국 임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기폭제 역할을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4년 반 이상의 공사 물량에 해당하는 21조8000여억원의 일감을 확보해 놓고 있습니다. 물론 이같은 성과는 국민과 정부의 도움없이는 절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현대건설과 인연을 맺은지 벌써 30년이 다 돼가는데요.

▲지난 1965년 건설부(현 건설교통부)를 시작으로 한국수자원개발공사와 한국산업기지개발공사를 거쳐 1976년 현대건설에 입사했으니 벌써 30년째 동고동락을 같이 해 온 셈인데요. 현대건설과 이어지는 인연을 '운명'이라고 여깁니다. 그만큼 사명감을 느낍니다. 동시에 회사에 대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건설과 이같은 운명을 다하는 날까지 결코 방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취임 이후 줄곧 소액주주들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의 경영성과를 강조해 오셨는데요.

▲유동성 위기와 두 차례의 감자를 통해 소액주주들에게 끼친 손해를 반드시 보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올바른 기업경영으로 주가를 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행스럽게 지난해 중반 이후 주가가 상승세를 타고 있으며 최근에는 증권가에서 1주당 목표가액을 2만5000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등 호조세를 띄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기업경영이 지속된다면 적어도 몇 년 내에는 일정금액의 배당도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평소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일궈놓은 서산간척지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셨는데요.

▲서산간척지는 돌아가신 명예회장과 현대건설의 혼이 담겨있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지난 2000년 유동성 위기때 서산간척지를 담보로 토지공사로부터 차입했던 3450억원을 완전히 상환 후 남은 땅은 1080만평입니다. 이 땅의 활용을 위해 지난 2월 서산시와 '서산 웰빙레저특구사업 추진합의서' 서명식을 가졌습니다. 서산간척지는 앞으로 현대건설의 큰 자산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올 경영계획은 어떻습니까.

▲올 한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다소 줄어들 것으로 봅니다. 다만 당기순이익은 사상 최대 규모의 순이익을 달성한 2004년도보다 더 늘어 2877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신규 수주도 7조8000여억원을 목표로 해 올해 말까지는 5년치 공사물량에 해당하는 25조2500억원까지 수주잔고를 끌어올릴 방침입니다.

-올 연말이 지나면 채권단의 지분 매각이 가능해지는데요. 이 경우 자연스럽게 M&A 얘기도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판단하기에 이른 감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채권단의 지분이 외국자본에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는 대다수 국민이나 정부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해외건설공사 수주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셨는데요.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고유가 상황은 전세계 플랜트업계에게는 호황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중동을 중심으로 유전개발사업이 대폭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정보망 강화를 위해 본사 조직을 개편하고 영업조직을 강화할 방침입니다. 현지 업체들과의 유대관계도 더욱 긴밀히 할 계획입니다.

-이란 사우스파에서의 추가 공사 수주 소식을 궁금해 하는데요.

▲현지 사정으로 결정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이미 발주처로부터 가격을 제시받기도 했습니다만, 최종 공사단가를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늦어도 올 상반기 내에는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정부가 최근 경기부양에 대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전체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건설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만큼 건설산업은 연쇄 활성화가 가능한 산업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정부의 규제 개선이나 경기 활성화 정책들에 대한 노력을 환영합니다. 다만 인위적인 개입보다는 시장에 맡기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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